큰 광장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엄마는 나를 피해 재빠르게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꿈속에서 나는 엄마를 몇 번 소리쳐 부를 뿐 엄마를 쫓아가지 못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가위에 눌린 것처럼 아팠다. 꿈이라는 걸 깨달았지만한참을 울었다.
날 바라보던 엄마에게서무표정을 느꼈고 그게 너무도 야속했다. 난 이렇게 엄마가 그리운데 왜 엄마는 날 두고 도망을 가버린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후 엄마는 한 번을 꿈에 나오지 않았다. 나 역시 그 꿈이 차가워서꿈에서라도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투박한 소망을 품지는 않았던것 같다.
엄마가 떠난 일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아빠의 재혼
그 이후 나는 늘 같은 꿈에서 엄마와 마주했다.
엄마와 나는 작지만 행복했던 시절의 집
작은방에 앉아 평범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방 안에서 따뜻한 기운을 잔뜩 느끼며 엄마와 함께였고
그 꿈에선 엄마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행복하고 소박한 대화 도중 엄마는 주방을 내다본다. 그 주방에선 아빠와 아빠의 재혼 상대가앉아 그들만이 온전한 가족인 듯 밥을 먹고 있다.
그제야 내 곁에 엄마는 없고 아빠는 재혼을 했다는 사실을깨닫고 이 행복했던 꿈이 내게 공포로 바뀐다.
엄마와 내게 내리쬐던 햇살은 사라지고 방이 온통 어두워진다.
엄마에게 미안한 맘과끝없는 외로움에 난 눈물이 터지고 엄마는 괜찮다며 날 위로해준다. 괜찮다며 그만 울라며 둘의 식사시간이 방해되지 않으려는 듯 몸을 사리는엄마.
꿈속의 그 집은 우리 집인데 엄마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의 꼴을 하고는 작아진다.
매 번 같은 꿈을 꿀 때마다 울다 잠에서 깼고 이 꿈으로 엄마는 셀 수 없이 많은 밤 내게 찾아왔다.
엄마가 진짜 괜찮아서 내 꿈에 나타난 것이 아닌 내가 엄마에게 미안해서 만든 꿈이란 걸 알기에 더 울어야만 했다.
좋은 모습으로 엄마와 만나고 싶은데
이 꿈 안에서 박제되어있는엄마를 기억하는 게 힘이 드는 날들도 많았다.
그리고 얼마 전 백신 접종 후 11년 만의 새로운 모습으로 엄마는 내 꿈속에 찾아왔다.
꿈속에서 남동생과 나는 함께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지난번 호캉스 때처럼 둘이 떠들며 놀기 좋은 호텔이라도 예약하자며 신이 나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내게 근사한 호텔이 아니어도 좋으니 너랑 나 둘이 어디라도 놀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왜냐고 무슨 일이냐 물으니 그냥이라고 대답하는 엄마의 무표정을 보며 이건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꿈인걸 안다면 꿈속의 엄마를 실망시킬 것 같아 "엄마 진짜 가고 싶은 곳 없어?"라고 되물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내 꿈속에 놀러 온 엄마에게 즐거운 시간을 준비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는 가까운 치킨집이라도 좋다고
너와 갈수만 있다면 좋다고 대답했고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 아들에게 좋은 호텔도 예약시키고 우리 재밌게 놀자며 엄마 아들이 돈도 되게 잘 번다고 엄마가기분 좋을 소식도 들려주었다.
꿈인걸 알지만 죽은 엄마가 걱정되었다.
엄마는 이미 죽어 무슨 일이 생길 일이 없지만
무슨 일이 생겨버려 내게 찾아온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꿈과 현실이 뒤섞여 몸이 축 쳐있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잠이 깨서도 엄마랑 어디 가지? 잠시 고민을 했다.
너무 생생한 꿈에진짜 엄마가다녀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오래전 죽은 엄마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제야 다른 꿈에서 엄마를 만났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것도 같다.
물론 이 역시 내 무의식이 만들어 낸 꿈일 것이다.
내가 엄마와 호캉스를 가고 싶었나, 동네 호프집에 앉아 평범한 모녀가 되고 싶었나 묻는다면 모두 맞다.
감흥이 남아 꿈을 되뇌다 보니 날 깨운 남편의 코골이가 작아졌다.
그리고는 내 딸의 새근새근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 우리 딸이랑 좋은 곳, 맛있는 식당에서 모녀 데이트나 해야겠네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