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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깨달음

거꾸로 신은 양말

짧은 글

by 아론

밖으로 나가던 차에, 오늘 코디에 맞는 양말을 찾는다.

쌓여있던 양말들도 세월을 함께하니, 구멍이 생기면 보내준다.

그러다, 검은색 양말을 거꾸로 신고 나왔다.


회사에서 의외의 매끈한 발의 촉감에 발을 살폈다.

현장으로 이동 중에 양말을 거꾸로 신었음을 알았다.

'거꾸로 신는 것도 괜찮은데?' 중얼거렸다.


당연할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때, 놀란다.

자잘한 기쁨과 함께하면 추억으로 남는다.

특히, 양말을 거꾸로 신으면 촉감이 새롭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 심부름을 자주 했었다.

주로, 슈퍼에 생필품이나 라면과 아버지 담배심부름을 했었다.

커가면서 퇴근하시는 어머니께 부탁하셨지만, 심부름이 싫었다.


중요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의 소중한 일들을 못하는 게 싫었다.

대개 컴퓨터 게임이나 만화책을 본 기억들이 많다.

그러다 어느 가을날의 기분 좋은 바람을 만났다.


지금보다는 조금 길었었던 가을의 맑은 날, 살결을 스치는 바람이 좋았다.

기분 좋은 바람이 내 팔과 다리를 훑고 지나감이 새로웠다.

지금도 종종 가을에는 정처 없이 바람을 향유하며 걷곤 한다.


어째서 거꾸로 신은 양말과 가을날의 바람이 겹쳐져 생각난 걸까?

하루하루가 예상한 것만큼 이뤄지지 않을 때, 우리는 자괴감에 빠진다.

그럴 때 우리를 다독여주는 건 그리 특별하지 않지만 소중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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