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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Aug 19. 2024

AM I 창의적?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이미 되어있는 당신에게

마지막 학기 수업 중 공연 예술 총론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보통 과목을 신청하기 전 강의 계획서를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다. 공연 예술 총론이라는 수업은 공연 예술의 이론 및 기획의 단계까지 배우는 수업이었고 수업은 강의와 토론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나와 있었다. 토론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끌림에 이끌려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무용과는 보통 토론 수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여태까지 무용과에서 토론 수업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이유는 수업 전에는 말이 많던 아이들이 이상하게 수업만 들어가면 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교수님들도 그런 무용과의 특성을 알고 계셨는지 토론을 잘 시키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 수업은 토론 수업이라기에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바로 수강신청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첫 시간부터 너무 잘 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원하는 수업 방식과 내용이었다. 


그러던 중 한 6주 차쯤에 교수님은 “여러분은 창의적인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하셨다. 그리고 모두 “네”라고 대답을 했다. 무용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답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창의력의 ‘창’ 자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있나요?”라고 질문하셨다. 질문과 동시 강의실은 조용해졌고 학생들은 눈만 끔벅끔벅 교수님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 교수님은 창의력의 ‘창’ 자의 뜻을 설명해 주셨다.


창의력의 ‘창’은 비롯하다, 시작하다, 다치다, 상하다, 징계하다, 혼이 나다, 슬퍼하다, 진저리 나다, 상처, 만들다 등이 있다. 지금 나온 이 뜻 중 긍정적인 뜻을 가진 말은 몇 개 없다. 대부분이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들이다. 실제로 ‘창’ 자의 뜻의 반 이상이 부정적 의미이다. 


우리는 창의적인 사람 하면 굉장히 긍정적이고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구나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창의적이라는 뜻은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통이 있어야만 창의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창’ 자는 보여준다. 교수님은 창의력의 뜻을 설명하시고 마지막 질문으로 “여러분은 예술을 하시며 고통이 있으셨나요?”라는 질문을 하셨다. 그리고 그 찰나에 휘리릭 하고 무용을 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순간순간들이 지나갔다. 그러면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여러분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상하게 집착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창의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예술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창의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난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창의적인 사람은 오직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었고,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했다. 하지만 창의적인 사람의 근본적인 의미가 자신의 삶(분야)에서 고통을 느꼈던 사람이라는 것임을 깨닫게 되고 이미 창의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 내가 얼마나 창의적인 예술가가 되기를 갈망했는지 몸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이미 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짜릿함은 인생에 대한 만족감을 준다. 그 만족감이 하나둘씩 쌓여서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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