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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Jan 01. 2022

누가 자꾸 구멍을 내는가?

고양이들 사이에도 규칙이 존재할까


5일 전 일이다. 망구가 소파 팔걸이에 느긋하게 앉아 쉬고 있는 것을 바라보다 웬 상처 하나를 발견했다. 대퇴부 원위, 지름 1mm가량의 뾰족한 무언가에 찍힌 듯한 상처였다. 우선 그 부분 털을 밀고 집에 있던 동물용 소독약을 뿌려주고 창상 연고를 발랐다. 이번에는 누굴까. 우리 집엔 그렇게 상처를 낼 만한 날카로운 모서리가 없기 때문에, 자그마한 상처는 저희들끼리 놀다 생긴 결과물일 것이라 짐작했다. 


지난번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6개월 전, 망구 옆에만 가면 꼬릿 한 냄새가 나 아이를 이리저리 살펴본 적이 있다. 양 손바닥을 넓게 펼쳐 아이의 몸을 쓸어내리다 보니 옆구리께 피부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만져졌다. 건들기만 해도 이리저리 몸을 빼길래 결국 이제는 7킬로를 훌쩍 넘은 아이를 등에 짊어지고 병원에 갔다. 원장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상처가 곪아 고름이 차 있는 상태라고 하셨다. 수의 테크니션 선생님이 망구를 붙들고, 원장 선생님이 환부를 쥐어짜자 불투명하고 진득한 고름이 퐁퐁 솟아났다. 아이는 생전 처음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원인은 고양이였다. 물린 상처일 것이라 단언하셨다. 가만 보니 구멍이 총 두 개였다. 송곳니가 꽤 깊이 파고들었다가 빠져나갔으며 상처가 곪아 속에 고름이 찬 것이라 하셨다. 우리는 얼이 빠져 집에 돌아왔고, 이 주 동안 소염제를 먹이고 연고를 발라주며 망구를 돌봤다. 의아했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한 번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기 위해 이빨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끼리 사이가 나쁜가? 그것도 아니다. 할 일 없는 주말, 잠을 잘 때는 네 마리가 한 침대에 뒤엉켜 자는 것은 물론 저들끼리 뛰어다니며 놀기 바쁘다. 누구의 짓이든 간에 공격적인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합사를 다시 시작해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그 방안은 아이들의 태도를 관찰하며 마음을 접기에 이르렀다. 망구는 형과 누나들에게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 고로 망구에게 솔, 풀, 택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의아함을 남기고 망구의 상처는 아물었다. 


처음 상처가 생겼을 당시 망구 씨



그리고 두 달 뒤, 망구의 등을 기준으로 꼬리와 뒷다리 사이 털이 뭉쳐 있는 것을 보고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검은 털을 들춰 봤다. 그때와 비슷한 상처가 나 있었다. 구멍은 총 두 개. 심해지기 전에 발견을 해 다행이었지만 마찬가지로 약간의 고름을 짜 내고 소염제와 연고를 처방받아 와야 했다. 환부를 훤히 보기 위하여 근처 털을 밀고 잘랐다. 미용 목적이 아니었고, 실력이 모자라서 그랬는지 꼭 쥐 파 먹은 모양새였다. 그 이후로 나는 종종 망구를 ‘땜빵구’라 부른다. 어쨌거나, 이번에는 누구의 짓인지 알아내고 싶었고 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을 택했다. 첫 단계로는 망구에게 생긴 송곳니 자국 간격을 측정했다. 1.9cm. 자, 그다음 솔과 풀의 송곳니 간격을 쟀다. 택은 애초에 접근이 불가하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결과 솔 1.9cm, 풀 1.7cm! 맹수가 초식 동물의 목덜미를 노릴 때 단박에 이빨을 꽂아 버리는 게 당연지사니 오차범위를 설정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숫자가 말해주고 있었다. 같은 종족의 거죽에 대뜸 이빨을 박아 넣은 짐승이 누구인지 말이다. 믿고 싶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망구는 풀에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고 풀은 솔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집 서열 1위는 솔이라는 결론.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망구가 솔 앞에서도 위축된다거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는 솔이 뒤통수에 앞발을 올리기도 하고 지나가는 솔이 다리를 툭툭 건들기도 한다. 몇 번 반복되면 참다 참다 열이 받은 솔이 레슬링을 시도하며 달려든다. 어쩌면 우리 집 고양이들의 세계는 인간의 생각과 달리 그들 사이에 서열이랄 것이 없을지도, 저들끼리 하나의 공동체를 일궈 잘 살고 있거나 그들 사이에서 리더 솔이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어 두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망구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우리가 눈치를 채지 못 한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에 주말 내내 아이들이 집 안에서 맞닥뜨리는 순간마다 매의 눈을 뜨고 살펴봤다. 이전에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고양이를 본 적 있다. 리더가 한 마리를 괴롭히자 무리가 다 같이 동조하여 한 마리를 몰아세웠다. 왕따 고양이는 집단의 눈초리에 위축된 상태로 구석을 자처하며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밥도 편히 먹지 못 했다. 그러나 우리 집 막내는 배가 보이도록 벌러덩 눕기도 하고 밥도 까드득 잘 씹어 먹고 침대 한가운데를 차지해 잠을 자며 신이 나서 온 집안을 활보하기도 한다. 따돌림이라 판단하기에는 심히 무리가 있다. 우리끼리 지은 결론은 그렇다. 망구의 자질구레한 장난을 참다못한 솔의 거센 반격일 것이라고. 평소 망구는 자신을 어릴 적부터 돌봐준 택의 위에 올라가 목덜미를 물고는 한다. 착한 택은 미미한 비명을 지를 뿐 망구를 혼내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 사이에서 혹독한 훈육 담당자는 솔일 것이라 예상한다. 어린 고양이들은 자신이 물었을 때 얼마나 아픈지, 무는 힘의 강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를 어미에게 배운다고 한다. 솔을 처음 데려왔던 5년 전, 어린 솔은 놀다가 흥분을 했을 때, 기분이 좋을 때, 기분이 나쁠 때마다 나를 물었다. 팔뚝에 이빨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물었다. 견디다 못한 나도 같이 물었다. (절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내가 목을 깨물자 당황하던 애기 솔의 얼굴이 생생하다. 그렇게 솔이 나이를 먹으면서 무는 행동은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해가 바뀌어 2살이 된 망구에게도 가르쳐 주는 누군가가 필요할 것이다. 이미 위로 셋이나 되는 (과격하고 다정한) 어덜트 캣들이 있으니 망구도 차차 깨닫게 될 것이다. 어째 깨달음의 길에 고통이 수반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우리가 회사에서 그들의 밥 값을 버는 동안 아이들은 무얼 하며 지낼까? 그들 사이에도 새롭게 마련된 규칙이 있을까? 갈등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이며, 화해는 어떻게 마무리되는 것일까? 그들의 세계가 궁금하다. 


최근 생긴 상처는 연고만으로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아마 이들의 세계에 우리가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유혈 사태가 벌어지거나 무고한 고양이가 지속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 이상은. 가끔 나와 삼월은 그런 대화를 나눈다. 우리가 그들 사이에 법관이 될 수 있을까? 우리의 기준으로 그들을 판별해도 될까? 예를 들어 풀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할 때 ‘와-아-아악↗!’하고 우는 경우, 그 성조는 사람이 짜증을 낼 때와 유사하여 듣는 우리 입장에서 난해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풀, 조금 더 착하게 말해줘.”라고 주문을 하거나 아예 대꾸를 하지 않는데, 그러면서도 우리는 의문을 갖는다. 만일 이게 그들 사이에서 상냥하고 정중한 말이라면? 우리와 그들은 한 가족이지만 어쩔 수 없는 소통의 벽이 존재한다. 결코 부서지지 않을 소통의 벽을 두고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동행하는 것이다. 모호한 기준을 정확히 세워 나가는 게 우리와 그들의 과제다. 앞으로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소파에, 침대에, 캣타워에 널브러져 있는 고양이들을 바라볼 때면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누나 몸 위에 발 올린 망구 씨
택이 엉아를 괴롭히는 망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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