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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Oct 22. 2023

어쨌든 달리기

어쩌다로 시작해 삶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어쩌다 시작한 달리기였지만, 어쨌든 나는 이제 러너다. 달리기에 막 입문했을 때부터 코로나19로 좀처럼 나갈 대회를 찾을 수 없었을 때, 그리고 다시 준비운동을 시작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뛰는 장소, 시간, 속도는 조금 달라졌을지언정 러너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누군가 왜 달리느냐 묻는다면 여전히 멋들어지게 대답할 말은 없다. “길이 그곳에 있어서” 같은 멋있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스스로도 아리송한 대답을 할 순 없을 테니까.


다만 달리는 일이 여전히 즐겁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평일 내내 직장에서 시달린 이후에도 주말 새벽 눈을 떠 깜깜한 도로를 지나 출발선에 도착하게 하는 힘. 그것은 달리기에 대해 가진 애정 때문이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공기인형’ 등으로 유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어떤 한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일이 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한 영화의 개봉을 기념한 인터뷰였다.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적인 공동체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하며, 그것이 꼭 혈연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러한 공동체가 사람을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하는 튜브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서.


달리기는 이제 내게 하나의 튜브가 된 것인지 모른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머리를 비우게 해주고, 지금까지 접점이 없던 사람들과 어울리게 해주고, 때로는 나 자신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하게 해줄 수 있는 튜브. 이 정도면 좋은 취미라 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나는 여러 대회를 다녔고, 그 길 곳곳에 추억을 쌓았다. 때론 좌절했고 때론 희망을 가졌으며, 때로는 멈추고 숨을 고르기도 했다. 그 여정은 힘들었지만 보람찼고, 무엇보다 즐거웠다.


러너로서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언젠가 머지 않은 시기에 풀코스에도 도전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울트라 마라톤에도 나가고 싶다. 많은 곳을 여행하고 재미있는 대회를 찾아다니며 되는 데까지 뛰어 보고 싶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스쳐온, 그리고 앞으로 스쳐갈 러너들과 그 값진 순간들을 공유한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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