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말입니다. 오늘은 내 삶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고요. 흔해서 마음에 크게 두지 않았던 말이 오늘은 내 마음에 콕 박힙니다. 동치미를 담그고 있었어요. 인터넷에 국 하나 끓이듯 쉽게 담글 수 있는 동치미레시피라고 해서 따라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등원 준비하며 육수를 끓이고 아이들이 가고 나서 자른 무를 저리면서 갑자기 문득 아침 네이버밴드에서 유연히 본 “오늘은 내 삶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서글퍼졌습니다. 내 삶에서 가장 젊은 날인 오늘, 지금 나는 왜 동치미를 담그고 있을까... 나 조차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왜 하필 지금 동치미를 담그고 있을까?
아티스트웨이 워크숍 11주차 ‘자율성을 되살린다’를 앞두고 있습니다. 워크숍을 하며 예전보다 내 안의 어린 아티스트가 많이 성장함을 느꼈었더랬지요. 그러나 이 질문 하나에 내 무릎은 너무 쉽게 털썩 꺽였습니다. 아직도 나는 갈 길이 멀구나...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졌습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창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픈 창작과 얼굴을 맞대는 것이 두렵나 봅니다. 지난 주말 혼자 다 해내기 힘들 정도의 많은 양의 배추와 무가 우리 집에 배달되어오자 마자 알아차렸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그러나 나는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무시하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회사에서 자신의 시간, 생명을 써서 번 돈을 내가 이렇게 허투루 쓰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아직도 이런 실수를 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힘겨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너무 답답합니다. 온몸에 힘이 빠집니다. 나는 왜 이렇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나, 그렇게 바뀌려고 노력을 함에도 나는 왜 그대로 인가. 나는 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나. 손톱만큼도 나아지지 않았나... 수 천 수 만 가지의 자책과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강력합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나는 글 쓰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사람들에게 내년에 꼭 책을 출판할 것이라고 이야기도 하고 다녔지요. 무슨 자신감이었을까요?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에 꽂혀 그렇게 말하면 꼭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대신에 동치미를 담그는 내 모습을 보며 나의 현재 상황을 알아차렸습니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서 작가가 되었을 때 나는 이제 나도 나의 책을 출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무척이나 컸습니다. 그러나 웬걸, 조회수도 그리 많지 않고, 구독하는 이도 늘지 않습니다. 나보다 더 글을 잘 쓰고 세련되게 편집하는 작가들을 보며 주눅이 들고 글을 쓰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자신감이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이 나의 글을 보게 될까를 생각하니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의 어린 아티스트를 위해 내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해낸 방법은 회피였나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와 배추를 잔득 주문하고 김치와 동치미를 담갔지요. 나의 또 다른 창작활동이라고 미화시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김치와 동치미를 담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내 삶에서 가장 젊은 날”라는 흔한 디 흔한 말을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너무 흔해서였을까요? 마주하기 힘들어서였을까요? 지금 나는 마치 “유리 조심”이라는 글을 보고도 계속 앞으로 걸어가다 유리벽에 쾅! 부딪혀 얼굴에 멍이 들고 코피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정말 열심히 키웠습니다. 외식보다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티비 보다는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일반 어린이집이 아닌 공동육아어린이집을 보내기 위해 이사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의 잘 키우기 위해 각종 육아서적과 팟캐스트를 섭렵했지요. 5년이라는 시간동안 아이들을 위해 나는 참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들 했습니다. 아이들이 잘 크는 것, 아이들에게 별일이 없는 것이 꼭 내가 잘 크고 나에게 별일 없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하지만 아니요. 동치미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갑자기 눈물이 납니다. 5년동안 내가 뭐하고 살았나?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와 자책과 서글픔이 몰려옵니다. 그럼에도 나는 육아에 손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육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을 단지 후회스러운 시간이라고 낙인 찍고 싶지도 않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는 진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서 아이러니하게 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내가 원하는 것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살 수 있겠어!’ 하다가도 정신을 못차리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예전으로 돌아가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허망합니다. 난 다른 사람들, 티비에 나오는 사람들, 책에서 나오는 사람들처럼 강단 있게 변하지 못하나... 비교하며 내 마음에 또 상처를 냅니다.
성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나는 많이 상처받고 많이 울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것을 성장이라 여깁니다. 나의 성장은 그러합니다. 상처받았는데도 상처받지 않은 척 하거나, 상처받아야하는 상황인데도 상처받지 않거나 혹은 상처받은 줄 모르거나, 눈물이 나는데도 모르거나 참는 것은 성장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시선, 세상의 기준과는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예민하게 받아들여주는 것이 용기이고 그것이 진짜 성장의 발판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나는 동치미 때문에 울었습니다. ‘진짜 나’를 회피하는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덕분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방향을 다시 찾아봅니다. 육아와 내가 하고픈 일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기술이 한 단계 레벨 업했습니다. 덕분에 나는 오전에 동치미를 만들고 오후에 나를 고백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너무 아파 눈물 흘리며 다시 나의 길을 찾아봅니다. 성장의 나이테가 늘어났습니다.
아... 김치와 동치미를 담그고도 무와 쪽파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내일은 쪽파 장아찌, 모레는 무피클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슬프지 않을 겁니다. 나의 현실 위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방향대로 한 발짝 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여러분의 가장 젊은 날인 지금, 그것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