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늘어나는 얼굴의 주름을 봅니다. 겨울만되면 자글자글한 내 손을 봅니다. 로션을 발라도 여전한 주름들을 보며 내가 걸어온 길을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었던 시절, 남들보다 예뻐보이고 싶었던 시절, 남들보다 승진을 잘하고 싶었던 시절... 항상 "남들"이 기준이었던 내 삶을 봅니다. 항상 다른 사람의 길, 다른 사람의 자리가 참 부러웠습니다. 내것은 너무 작고 보잘것 없어보였습니다. 남이 가진 것이 너무나 부러워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냥 깔아뭉개기도 했고, 내가 가진 것을 과장해서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내가 얻은 배움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은 남의 것.
입니다.
그 배움을 통해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것입니다. 함부로 대했던, 쳐다봐주지도 않았던 나의 것이 보였습니다. 남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에 깔려 보이지 않았던 나의 보석이 이제서야 눈에 보입니다.
내 얼굴에는 흉터가 있습니다. 다섯살때 목재를 나르던 큰 트럭에 치여서 생긴 흉터입니다. 20대 후반때까지 나는 내 얼굴의 흉터만을 보았습니다. 거울을 볼때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흉터만 보였습니다. 내 얼굴은 흉터였습니다. 내 존재는 흉터였습니다. 모든 것을 지우고 싶고 새롭게 바꾸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내 얼굴을 보면 눈이 보입니다. 입이 보입니다. 재밌는 것이 있으면 반짝거리는 눈과 웃을때 역삼각형이 되는 입이있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그것들에게 흉터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알아주는 순간, 신기하게도 내 얼굴의 흉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안쓰럽게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사라졌습니다.
아이 셋 키우느라 물기가 다빠진 겨울 나뭇가지처럼 된 나를 바라봅니다. 주름이 싫고 건조함이 싫습니다. 그러면서 주름 속에, 건조함 속의 나의 역사가 보입니다. 아이가 셋이 생겼고 그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주름을 가만히 바라보며 사랑해줍니다. '주름 너도 나구나. 니가 있어 내가 있다. 고맙다.' 어떻게 하면 예쁜 주름이 될지 생각해봅니다. 예쁜게 웃고 예쁘게 살고 싶어집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지금, 겨울 나뭇가지가 아닌 봄의 나뭇가지가 되는 나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봅니다. 피부엔 주름이 더 깊어지겠지요, 더 건조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의 영혼에는, 나의 심장에는 물기가 가득, 생기가 파릇파릇 피어나올 것을 압니다. 묵묵히 겨울을 버텨봅니다. 터져나올 나무잎 하나를 피울 그 날을 잠잠히 기다려봅니다.
당신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신체 부위는 어디인가요?
그 신체부위가 아파하는 6살 아이라면,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