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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Dec 27. 2019

좋은 엄마가 되려다가 놓친 것

아이들에게 잘 웃고, 아이들에게 친절한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소리치거나 나쁜 말 하고 싶지 않고 항상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하는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감정에 동요되어 아이의 자존감을 해치는 말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서 명상, 심리학, 코칭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한 지 어언 4년. 아이 셋의 엄마이자 코치이 강사인 저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할까요?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었을까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나 공부했음에도 전후가 별달리 차이가 없다니.... 제일 실망한 사람은 바로 제 자신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는데도 아이들에게 화가 나서 소리 지를 때, 그 후에 밀려오는 자책과 자괴감은 어마어마했습니다. 헛공부한 것 같고, 내가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면서 누군가를 코칭하고 강사를 한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아이들 앞에서의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가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아는데도, 너무나도 잘 아는데도 왜 아이들에게 소리치는 엄마일까? 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려다가, 좋은 코치가 되려다가 놓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에게 좋은 나"입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좋은 코치가 되기 위해 공부도 실습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냥 나에게는 참 혹독했습니다. 잠잘 시간에 공부를 하고 잠잘 시간에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좋은 엄마, 좋은 코치가 되는 과정 속에 "그냥 나"는 소외되었습니다.


요즘 우리 셋째 아이는 잠을 잘 못 잡니다. 어금니가 나나봅니다. 이가 다 나고 나면, 성장통으로 잠을 못 자고. 성장통이 지나가면 다른 이가 난다고 잠을 못 자지요. 나야하는 이는 왜 그렇게나 많은지, 성장통은 왜 잊지않고 때마다 꼭 찾아오는지. 무시무시한 불면의 루트는 향후 최소 1~2년간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잠을 쪼개서 좋은 엄마와 코치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대단하다고도 하고 멋지다고도 했지요. 그 말에 현혹되었는지, 성장의 기쁨에 중독되었는지 나의 피곤함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며칠 불면의 잠을 보내고 나니 목구멍의 반이 막힌 것 같습니다. 입술에는 진물이 일어납니다. 돌아보니, 좋은 엄마가 되고자 마음먹은 날부터 나는 항상 애썼습니다. 얼마 없는 휴식의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책을 보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입술의 포진은 월례행사였고 편도선염은 일상이었습니다.


피곤한 나가,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대할 수 있었을까요? 가능한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참 힘든 일입니다. 그 대단한 일을 저는 하려 했던 겁니다. 항상 내 자신을 챙겨라...라고 말했던 저이지만, 정작 코치, 강사, 엄마가 아닌 아무 타이틀이 없는 저에게는 인색했습니다. 제일 챙겨줘야 할 사람은 바로 아무것도 아닌 그냥 나입니다.


영혼의 단짝처럼 느껴지는 입술 포진과 만성적인 어깨 통증과 익숙해진 편도선염을 위로해주고 싶은 밤입니다. 초코파이 세 개를 하나씩 뜯으며 하나는 입술 포진을 위해, 둘은 어깨 통증을 위해 셋은 편도선염을 위해 맛있게 먹어봅니다. 그간의 무심함을 초코파이 세 개로 퉁쳐지지는 않겠지만, 너희들을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체력은 육아력입니다. 나를 아끼는 만큼 육아도 잘할 수 있습니다. 나를 아끼는 만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좋은 엄마이기보다, 나에게 좋은 나이기를 바라봅니다.




Q. 여러분은 체력은 안녕하십니까?

Q, 아무것도 아닌 그냥 나의 몸과 마음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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