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주제 - 희망
이제는 만나지 않을 친구에게.
분노한 바다가 검푸르게 출렁이고 있어.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는 화가 나서 포효하는 맹수처럼 으르렁 거리고 있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요동치는 배 안에는 모든 물건들이 방황하고 있어. 온몸이 흠뻑 젖은 너는 구겨진 종이처럼 힘없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신에게 살려달라고 구걸하고 있는 중이야. 새까만 어둠 속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롭게 삐걱거리는 돛대의 비명, 너를 삼키는 파도가 울부짖는 소리, 우르릉쾅 세상을 갈라놓는 천둥과 번개 소리에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아.
번쩍.
여전한 파도.
번쩍.
여전한 폭풍우.
번쩍.
너를 향해 달려오는 짐짝들.
번쩍.
부러지는 돛대.
번쩍.
세상이 끝나는 소리.
세상이 끝난 줄 알았는데 폭풍우가 끝이 났어. 넌 살아남았지. 하지만 동료들의 시신을 보며 살아남았다는 걸 즐거워할 겨를은 없어. 겨우 시신을 수습하고 부상당한 동료를 추스르며 폭풍우에 떠밀려 어디로 왔는지 위치를 확인해야 해. 여전히 깜깜한 어둠 속이야.
반짝.
등대다.
반짝.
멀지 않은 곳에 육지가 있을 거야.
반짝.
살았다.
반짝.
좌현 선수 쪽이다!
반짝.
배를 동남쪽으로 돌려라!
등대의 빛을 본 이후에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어. 며칠간 지속된 화창한 하늘도 한 몫했지. 하지만 가도 가도 육지는 보이지 않아.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해. 그때 그 빛은 우리가 헛 것을 본 것일까? 죽음의 신이 장난질을 친 게 아닐까? 사람들은 두려움이라는 미끼를 덥석 물어버려. 설상가상. 멀리 하늘에선 검은 구름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어.
번쩍.
다시 파도.
번쩍.
다시 폭풍우.
번쩍.
다시 너를 향해 달려오는 짐짝들.
번쩍.
남아있는 돛대가 부러지는 소리.
번쩍.
다시 세상이 끝나는 소리.
악몽 같은 시간이 되풀이되는 거야. 그렇게 반복되는 고통과 두려움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 다시 밤이 찾아와.
반짝.
등대다.
반짝.
진짜일까?
반짝.
귀신의 장난일까?
반짝.
믿어도 될까?
반짝.
따라가도 될까?
어때? 너라면 저 빛을 믿고 따라갈 거니? 사람들에게 저 빛은 희망일까? 희망고문일까? 넌 무엇이라고 믿고 싶니?
희망은 참 좋은 거야. 희망이 없으면 고통 속에서 버텨내기 힘들지. 아마 더 쉽고 나약하게 포기하게 될 거야.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아무거나 희망이라고 믿어버리면 안 돼. 정말 희망이라고 할만한 걸 희망으로 생각해야 해. 만약 너한테 GPS도 디지털 항해지도도 없고, 하다못해 섹스턴트-태양이나 별의 고도를 측정해 현재 위치를 계산하는 도구야-나 나침반도 없다면 골치가 아프겠구나. 그렇다면 별자리를 보면서 너의 위치를 파악해 보렴. 그리고 그게 등대인지 멀리 얼음섬이라도 반짝이는 것인지 아니면 너의 배처럼 파도에 출렁거리던 어느 배에서 보내던 빛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환상일지 판단해야 해.
인생이라는 항해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네가 말하는 희망이 내가 보기엔 위험해 보일 때가 많았어. 특히 네가 만나는 남자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유부남들. 그건 희망이 아니야. 사람들은 보통 그걸 불륜이라고 부르지. 네가 보는 불빛이 희망인지 아닌지 잘 판단할 수 있는 GPS와 전자해도와 레이다 같은 책들을 소개해줄게.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전자 어쩌고까진 아니더라도 네 인생의 나침반 같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나와. 윌리엄 쾀캄바의 아버지야.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떻게 희망을 찾고 노력해야 하는지 삶을 통해 아들을 교육시킨단다. 그 아들은 바람을 길들여 아프리카에 희망의 불을 켜지. 참 감동적이야. 네가 정말 믿고 갈 수 있는 등대 불빛을 찾아내길 기도할게. 희망은 좋은 거니까.
2025년. 2월. 믿을만한 희망을 찾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