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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Feb 28. 2020

Mirare


“네가?”

“뭐가?”

“네가 참았다고?”

“어.”

“억울한 일이 생기면 눈물을 흘리는 대신 짱돌을 손에 쥐는 네가?”

“어!”

“부모님이 남동생한테 손톱만큼이라도 더 잘해주는 거 같으면 아들 딸 차별하냐고 악을 악을 쓰며 대들던 네가?”

“어!!”

“남들 다 조용히 있을 때 굳이 시키지도 않은 총대 메고 나서서 원장한테 부당하다고 지적질하더니 보란 듯이 대차게 짤린 네가?”

“어!!!”

“네가 따박따박 따지지 않고 참았다고?”

“어!!!! 참았다고! 나는 뭐 참으면 안돼?”

“왜? 왜 참았는데?”

“.....논리적으로 따져 물을수록 시어머니 심술만 더 심해지더라.”

“그러면 그렇지. 그러니까 단 한 번도 따지지 않고 넘어간 건 아니라는 거지?”

“뭐?”

“흐흐흐.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뻔히 아는데 어디서 약을 팔고 그래.”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억울한 거 못 참지. 분한 거 못 참지. 부당한 거 못 참지. 솔직히 난 너보다 너희 시어머니가 더 걱정된다. 네가 너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너 보통 아니야.”

“그럼, 나 보통 아니지. 남편은 사업 실패해서 빚이 몇 억이지, 생활비 주는 사람도,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애 키우고 살림하고 돈 벌어 가장 노릇까지 하는 와중에 시어머니 패악질까지 참으면서 가족들한테 내색 한 번을 안 하고 멘탈 붙잡고 살아 있는 게 어디 보통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니?”

“거 봐. 그런 네가 어디 참기만 했겠어? 잘 생각해봐. 대차게 할 말 질러 놓고 기억 못 하는 거 아냐?”

“어리석은 시어머니한테 맞서 지켜야 할 건, 내 자존심이 아니라 내 가정이라고 생각했어.”

“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참으면서 가정을 굳건하게 지키면,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노예로 받아들이시더라고. 시어머니의 가족을 지키는 노예.”

“네가 노예라고? 너 예전에 딸 둔 엄마는 딸네 싱크대 앞에서 고꾸라져 죽고, 아들 둔 엄마는 아들네 현관문 앞에서 고꾸라져 죽는다는데... 너희 시어머니는 며느리네 싱크대 앞에서 고꾸라져 죽을 것 같다며.”

“그게 왜 며느리 싱크대야! 아들 싱크대지! 그게 꼭 나만 해야 하는 일이야?”

“이거 봐라 이거 봐. 그래, 뭐 그렇다 치자. 아무튼 싱크대 앞에서 고꾸라져가던 건 너뿐만이 아니었다면, 너만 노예가 아니라 너희 시어머니도 같은 처지 아니야?”

“그건 며느리를 위한 게 아니라 당신 아들을 위한 본인의 선택이었어.”

“무슨 말이야?”

“아들이 싱크대 앞에 서는 건 죽어도 못 보겠고 어떻게든 며느리만 세우려고 하시는데 내가 나만 서지 않으니 같이 죽자고 하시는 거잖아.”

“그러니까 차라리 남편 대신 시어머니가 싱크대 앞에서 고꾸라져 죽어라?”

“그럴 수는 없어. 그래서는 안되지. 이제는 시어머니도 시어머니 인생 찾고, 나도 내 인생을 찾아야 해. 내 인생을 학대받는 며느리로 낭비하는 건 나한테 죄를 짓는 거야.”

“뭐, 여성 해방. 이런 거 말하는 거야?”

“여성해방?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그리고 어머니랑 나만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었잖아. 남편도 힘들었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남편도 어머니 몰래 부지런히 싱크대 앞에 섰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알지. 여성 해방을 위해 어머니와 나만 싱크대 앞에서 해방되면, 남편은? 그러니 여성해방이라는 몽롱한 꿈 따위 꿀 여유가 없어. 나는 그냥 나 자신이나 해방시켰으면 좋겠어.”

“너를 해방시킨다고? 사랑에 미쳐서 오빠가 나랑 살기 위해 꿈을 포기했다는 말 대신 나랑 살아서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하길 바란 게 누구였더라? 너를 가둔 건 너 아냐?”

“내가 서로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자고 한 말이지. ‘내 목에 빨대 꽂아서 내 피를 빨면서 너만 꿈을 이뤄라’ 한건 아니잖아! 나도 내 꿈이 있다고!”

“그래서 이제 행복하니?”

“적어도 며느리로 살 때보다는.”

“그럼 이제 너희 부부가 일하는 동안 아이는 누가 봐줘?”

“이제 제법 컸고, 학교 돌봄에 맡기지.”

“너 퇴근 많이 늦지 않아? 그때까지도 돌봄이 가능해?”

“아니, 집에 오면 거의 11시, 12시인데... 어떻게 그때까지 돌봄에 있겠어.”

“그럼 누가 봐?”

“남편이 봐야지. 내가 일찍 퇴근하는 날은 바통 터치하고 남편이 다시 출근하거나 내가 늦는 날은 남편이 씻겨서 재워. 아이가 아빠랑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아빠가 없으면 아빠를 보고 싶어 하더라.”

“반찬이랑 이런 거 다 시어머니가 해주셨다며. 이제 어떻게 해?”

“사 먹지. 남편이랑 번갈아 가며 시간 되는 사람이 만들던가.”

“시어머니 안 보고 너희 세 가족 알콩달콩 사니 좋아?”

“그러게. 좋네. 뭔가, 마음이 불편할 줄 알았는데. 너무 좋아서 당황스럽다. 더 빨리 못한 게 아쉬울 지경이야.”

“정말 계속 쭉 괜찮을까?”

“무슨 소리야?”

“안 그래도 너희 가족이 별로 없다며. 친척도 사촌도 없어서 아들이 외로워한다며. 너야 괜찮지만 네 아들은 더 외로운 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글쎄...”

“사실 별로 좋은 일은 아니잖아. 지금 네가 한 일이 부메랑이 되어 너한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해? ‘맘에 안 들어! 그럼 손절!’ 이걸 가르치게 되는 거잖아. 네 아들이 이걸 배운다면 결국 외로워지지 않을까?”

“너무 고통스러운 관계라면 차라리 끊는 게 나을 것 같은데?.......그런데 너는 누구니?”

“나?.... 너!”




Mirare -  mirror의 어원인 라틴어. “바라보다 응시하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다”라는 뜻이 있다. 신기하게 생각하다'라는 뜻의 Mirari의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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