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싱클레어 Oct 20. 2023

우리의 봄날


  내 품을 떠나 어린이집에 간다고 나섰던 아이가 기억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칫솔, 치약, 낮잠 이불, 여벌 옷까지 준비하여 보냈는데 아이 생각에 참지 못하고 두 시간 만에 전화를 걸었다. 바쁜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 뒤로 전화기 넘어 같은 반 친구들의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아이가 잘 있는지 묻지도 못하고 전화를 바쁘게 끊어야 했다.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내 품을 떠난 아이가 짠해서 어린이집 담벼락 아래서 그렇게 울었다. ‘회사 그만둬야지. 안쓰러워서 더는 못 해 먹겠다.’     


  애지중지 키웠던 아이가 어느덧 자라 초등학교를 졸업한다고 했다. 연차 안 되는 나에겐 아이의 입학식과 졸업식, 공개수업 등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나마 근무가 유연한 아빠가 아이의 통학과 학교 행사를 도맡아 다녔다. 학교에는 오래지 않아 아빠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발 없는 말은 천 리를 가서 내 귀에 돌아 들어왔다. 그날도 속상해서 한참을 울었다. ‘간호사 그만둬야지. 정말 더는 못 해 먹겠다.’ 또 몇 번이나 마음을 먹고 또 고쳐먹고 했던 시간 들이 떠올랐다. 언제 이렇게 자랐대.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간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말을 꺼내었다.


“선생님... 저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인데...”

“졸업식 가야지!”


  말을 떼기가 무섭게 오프를 주신단다. 다른 건 몰라도 애들 입학 졸업은 가야 한다며 흔쾌히 응해 주신 선배 간호사 선생님. 감사하다 못해 이건 감동이다. 내가 힘겹게 운을 떼는 사이 먼저 알아채고 말해주신 듯하다.

  그러고 보니 간호사 명찰을 달고 첫 출근 했을 때,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근무지에 배정받았을 때, 처음 주삿바늘을 잡았을 때, 차지 선생님께 처음으로 호되게 야단을 맞았을 때, 오래 봐왔던 담당 환자가 처음으로 돌아가셨을 때, 드디어 막내를 탈출하고 신규 선생님이 들어 온다고 했을 때. 나에게도 수없이 많은 처음의 순간이 지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만큼 여물어져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은 수없이 많은사람들의 배려와 이해로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이가 자라고 있던 만큼 나도 자라고 있었다.     


  전교생30명 남짓. 그 작은 초등학교 9명의 졸업생... 졸업식장에서 아이가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 품에 어린 병아리 같던 아이가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준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혼자서 씩씩하게 자란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복받쳤다. 나 역시 마스크 안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느껴졌다. 엄마도 처음이라 서툴렀고, 너도 처음이라 힘든 시간을 나름의 방법으로 잘 이겨 냈으리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며 경험하게 되는 어떤 처음도 지금처럼 하나씩 해보자 마음먹었다. 나는 언제나 너의 뒤에서 든든히 받쳐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손을 잡고 함께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는 나에게 손을 내밀고 나는 고개를 돌려 바라 보며 찡끗 웃는다. 더 이상 ‘간호사 그만둬야지’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우리가 조금 자라났기 때문일까. 이유를 찾고 싶지는 않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출발선에 선 너와 나.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살짝 불어오는 봄기운 가득한 바람은 우리를 응원해 주는 것만 같다.     

이전 03화 시금치와 폴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