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아니라는 진실

by againJ

더 이상 말간 아이처럼 좋은 일만 있을 거라 믿진 않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거나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맞닥뜨리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상이 되는 아이 같은 심정이 된다. 특히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얻지 못했다 싶을 때 그런 것 같다.


이번 주는 그런 주였다. 열심히 노력했고 실제로 점수도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아이도 나도 속상했고 화도 났다. 따져 묻기도 하고 선생님도 인정을 하셨지만 수긍이 가거나 결과가 바뀌지는 않았다. 억울한 마음이었지만 판단은 우리 몫이 아니었다. 받아들여야만 했다. 더구나 난 이런 경험에서도 패배감에 휩싸이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아이를 격려해야 하는 부모니 이럴 땐 여전히 적당한 답을 몰라 헤맨다.


요가 수련도 그랬다. 월, 화, 수 연달아 수련을 해서 수요일 80분 아쉬탕가에서는 몸이 완전히 풀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틀 수련 중 근육통이 쌓여 몸이 경직되었다. 아쉬탕가 수련은 오랜만이라 쿠르마사나(거북이 자세)나 숲타 쿠르마사나처럼 낯선 동작들도 있었고, 팔과 복부로 지탱하고 다리를 양 귀 옆으로 끌어올리는 티티바사나처럼 전혀 불가능한 동작들도 있었다. 연달아 매일 수련한 주된 이유가 요즈음 계속 집중 수련 중인 시르사 아사나를 완성해보고 싶어서였는데 이미 에너지가 바닥난 느낌이라 오늘은 전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안될까? 노력이 자꾸 나만 배신하는 것 같을 때 억울하고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행운이나 요행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한 데 대한 정당한 보상은 당연한 게 아닌가?


끝내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에서도 버겁게 2회를 마치고 포기한 채 혼자 사바아사나로 넘어갔다. 왜라고 계속 집착하고 따져봤자 해결되는 건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친 몸과 마음을 스스로 위무하는 것이었다.


일어나 가부좌를 하고 연꽃 자세를 취한다. 허리를 바로 새우고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놓은 다음 엄지와 검지를 살짝 붙여 동그랗게 만든 손등으로 지긋이 양 무릎을 누른 채 가만 눈을 감는다. 그리고 깊이 호흡한다.


불안정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호흡이 편안해진다. 생각대로만 흐르지 않는 게 삶이란 걸 언제 즈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까? 언젠간 최선을 다하고도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때론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하다 해도 그것마저 포용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갈 길이 멀지만 불과 물의 조화, 우주와 개인 의식의 조화를 상징한다는 요가 무드라 안에서 잠시 마음의 평화를 구해본다. 모든 것을 흘러가게 두어보자. 이번 주도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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