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꼰대 말고 꽃망울

by againJ

요가 꼰대가 되었나?


막연히 이제 알고도 못하는 동작은 있어도 아예 처음 보는 아사나는 없지 않나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건 어설픈 착각이었다는 걸 확인한 이번 주 수련. 이번 주는 수련 중 처음 만나는 새로운 자세들(부자피다 아사나, 마유라 아사나)이 유달리 많았다.(그리고 당연한 결과지만 헤맸다.)


보통 일주일에 세 번 수련하는데 시작은 힐랙스로 주말 동안 찌뿌둥해진 몸을 가볍게 풀어주고 나머지 두 번은 아쉬탕가, 빈야사, 하타를 번갈아 하고 있다. 힐랙스로 시작하는 월요일은 수련을 마치면 대체로 개운한 편인데 이번 주는 어쩐 일인지 목에 담이 와 두통이 생길 정도로 오른쪽으로 아예 고개를 돌릴 수 없게 되면서 이틀을 꼬박 고생했다.


시작부터 이러니 모든 일이 엉켜버렸다. 등교했던 아이는 갑자기 인후통으로 조퇴를 했고 이틀은 꼼짝없이 집에서 지켜보아야 했다. 자잘한 집안일들은 쌓이는데 컨디션이 별로니 모든 게 귀찮고 소파에 앉아 괜스레 넷플릭스나 티빙을 들락거리고 점심을 대충 인스턴트로 때우고 후식으로 달달구리 간식들을 마구 욱여넣고. 이래서 행복하다면 그걸로 족하겠지만 이내 간당거리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퍼뜩 떠올라 더 우울해지는 악순환.


안 되겠다 싶어 수요일엔 오랜만에 아쉬탕가 수련에 들어갔다. 같은 시퀀스를 반복하는 아쉬탕가를 하다 보면 잘 되던 동작이 어느 날은 잘 안되기도 하고 어려웠던 동작이 나아지기도 해서 그날 나의 컨디션을 즉각 확인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해 순간에 집중하고 마침내 사바 아사나에 이르면 쌓였던 나쁜 에너지는 빠져나가고 새 에너지가 채워지는 기분이라 이 맛에 아쉬탕가를 한다.


특히 어제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아쉬탕가를 다 안다 착각했나 싶었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게 다가 아니구나. 내가 했던 동작에 한 단계 더 나아간 아사나가 있고 이제껏 건너뛰었던 아사나도 있었던 거구나. 요가 꼰대였다니 부끄러웠다.


어제의 좋은 에너지를 이어가고 싶어 오늘 아침 다시 하타 수련. 아쉬탕가 여파로 팔이 후들거렸지만 천천히 매 동작마다 깊이 호흡하며 집중하고 멈추어 본다. 마치 처음 해보는 아사나처럼.


부장가 아사나에서 허리가 조금 편안해진다. 오늘 처음 해본 다리 사이로 밀어 넣은 팔로 몸을 받치고 들어 올리는 부자피다 아사나도 몇 초간 해낼 수 있었다. 수련 중 풀린 몸으로 드디어 팔을 완전히 펴고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까지. 그렇게 무겁게 느껴졌던 머리와 불편하게 꺾였던 허리가 부드럽게 휘어졌을 때의 쾌감이란!


바닥을 찍고 올라온 느낌인 이번 주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나무마다 작게 맺힌 꽃망울들이 어찌나 예쁘던지 잠시 멈춰 사진도 한 장 남겨보는 중년의 요가 꼰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건만 일상에서도 꼰대가 돼버린 나 자신을 마주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원래 그렇더라 라는 말로 상대의 말에 반자동으로 맞장구를 치거나 밥상에서 살아보니 말이야로 시작하는 좋은 말이지만 분명 하나마나한 잔소리를 내뱉고 뒤돌아서면 자괴감에 울상이 된다. 인생에 중요한 건 다 알고 대부분 경험해봤으며 그 세상이 전부라 착각하고 사는 내 삶에 과연 남은 건 무엇일까 싶어서.


활짝 핀 꽃만큼 피기 직전, 뭔가 이뤄보려 애쓰는 꽃망울도 아름답다. 저 작은 망울을 틔울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추위와 비, 먼지를 견디며 애썼을까. 잘 사는 건 아마도 저렇게 작은 꽃망울을 틔워보려는 매일의 노력인가 보다. 올봄, 나도 요가 꼰대 말고 꽃망울이 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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