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했다고 벌써

200412

by 이건우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출근도 없는데 이렇게 일찍 눈이 떠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 의미를 해명할 수 있는 가설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어제 일찍 잠들었기 때문이라는 가설. 그러나 지금껏 일찍 잤다고 해서 일찍 눈이 떠진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며, 일찍 잠들었다는 것은 보통 일찍 잔만큼 수면 시간이 늘어남을 의미했다. 그래서 나는 늘 ‘어차피 늦게 일어날 거라면 차라리 아주 늦게 자고 일어나야 깨어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둘째, 몸이 출근에 익숙해져 자연스레 일찍 눈이 떠졌다는 가설. 꽤 설득력 있는 가설이지만, 어제는 늦게 일어났으므로 간단히 논파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생활을 생각해본다면 어제는 비교적 일찍 일어난 편에 속하므로, 이 가설은 시간이 지나야만 제대로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오늘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는 것은 별 이유도 의미도 없다는 결론으로 향하는 걸까.

마지막으로 나는 눈이 떠지기 직전에 꿨던 꿈을 떠올린다. 그 꿈이 어쩌면 일찍 눈이 떠진 것의 의미에 관한 단서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꿈은 내가 무척이나 자주 꾸던 꿈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시간이 부족해 시험을 망쳐가고 있는 꿈’을 자주 꾸었다. 패턴은 늘 똑같았다. 나는 고등학생이다. 내신 시험을 치고 있고, 꿈속에서 풀고 있는 시험지는 늘 국영수다. 나는 언제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문제는 전혀 못 풀고 있다. 망했다는 생각과 함께 똥줄이 탄 채 열심히 문제를 풀지만, 답도 제대로 못 적다가 시간이 종료된다. 그렇게 꿈이 끝난다. 늘 똑같은 패턴의 꿈이지만, 늘 생생하게 망한다. 왜 나는 교사가 된 지금까지도 시험을 망치고 있는 학생의 꿈을 꾸는가.

그 꿈에서 나는 사실 문제를 제대로 풀고 있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그래서 망했다는 생각, 빨리 풀어야 한다는 생각,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망했다는 생각뿐이다. 그 꿈에서만큼 초조해 본 적은 현실에서도 없다. 그러나 현실과의 공통점이 있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습관처럼 달라붙었다. 시간이 재화처럼 느껴졌다. 내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고, 지금까지 얼마나 생산적으로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계산하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늦잠을 자는 것이, 늦잠 때문에 낮 시간이 줄어든 것이, 그것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늘 늦잠을 자는 내 자신이 미웠다. ‘뭐했다고 벌써 해가 지냐’는 말은 주말마다 빼먹은 적이 없다. 심지어 문득 샤워를 하다가 죽을 날이 한참 남은 나이임에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고 사후의 공허와 무를 떠올리며 슬퍼한 적도 있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늘 시간에 대해 초조함을 느끼고, 그것이 꿈에 반영된 건지 그 반대인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시간이 부족해 시험을 망치는 학생의 꿈을 자주 꾸며, 교사가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꿈을 꾼다. 이는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를테면 내게 어른이 아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정도가 될까.

저녁을 준비하는데 애인이 내게, 스스로가 어른 같다고 느끼는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애인은 자기는 운전을 할 때 스스로가 어른 같다고 느낀다고 했고, 나는 잘 모르겠으나 직장인의 생활을 할 때 그런 것 같다는 두루뭉술한 대답을 했다. 직장인의 생활이란 도대체 뭘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일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닥쳐오고 있는 중이며, 나는 여전히 지나온 시간들의 관성 속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의 관성은 점점 옅어질 것이며, 나는 새 시간 속으로 진입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어떤 것들은 망한 시험지처럼 구겨져 잊히기도 할 것이다. 시험을 망치고 있는 학생의 꿈을 꾼다는 건, 어쩌면 잊히고야 말 시간들을 어떻게든 잊지 않으려는 절박한 몸부림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그랬듯, 시간은 다가오고 시험은 망한다.

오늘은 일찍 눈이 떠졌다. 일찍 일어난 일요일엔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 글처럼, 몇 겹의 시간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는 대관절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나는 여전히 시험을 망치는 꿈을 꾸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종종 일찍 눈이 떠지는 일요일을 맞는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내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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