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난 그리고 이사

혼 날만 했다. 그런데 왜 이사를 했을까?

by Peter Choi

어느 날 나는 난생처음으로 된통 혼난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엌에서 불을 지피다가 부지깽이를 슬며시 꺼내 부엌에 있던 솔잎에 불을 붙여 보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호기심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어처구니없는 실수다. 할아버지의 조기 진화가 성공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릴 뻔했고 나는 우리 가정의 역사에 길이 남을 악당이 될뻔했다.


그때 맞은 회초리가 지금도 욱신거리는 듯하다. 그 이후로 나는 불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어떤 때에는 집에 나가다가 가스레인지 밸브가 잠겼는지 돌아가 보는 때도 있다. 그때의 트라우마는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치명적인 실수에 조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초가산간 소중한 이 집에서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이유가 다른 곳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추호도 의심 없이 그 사실을 믿었다.


이유는 이러했다. 우리 집은 부엌 위에 사람이 겨우 들어갈만한 다락방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에서 끔찍하게 큰 구렁이가 나왔다고 한다. 내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하여튼 그 당시에는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집을 팔았는지 버렸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팔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금전적인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왜냐하면 팔고 나서 아버지는 그 집을 못내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구렁이가 나오는 집이라 이사를 가는 것이라고 믿고 이사를 갔다.


어느 마음씨 좋은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갔다. 할머니는 우리 가족을 위해 방 한 칸 내어주었다. 그 방에는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쪽방이 딸려 있었다. 그 방에 할아버지가 주무셨고 부모님이랑 막 태어난 막냇동생을 포함한 다섯 형제자매가 한방에서 잤다. 부엌은 칸막이도 없었고 위치도 집 뒤쪽에 있었다. 내 인생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우리 집 바로 옆에 삼총사로 지냈던 한 살 많은 형이 살았다. 이 형과 산과 들을 누비며 신나게 놀았기에 가난했다는 기억이 많이 없다. 오히려 즐거운 기억만 남아있다. 형의 아버지 또한 우리 아버지랑 절친이었고 형의 누나들도 우리 누나들이랑 친구이거나 비슷한 또래였다. 숨 막히는 좁은 방에 살았지만 이웃은 너무나 인심 많고 착하였다. 집과 들과 산이 모두 나의 놀이터였다.


그 집에는 감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배고픈 나에게 드러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다. 나보다 한 살 작은 주인집 아들은 감나무 타기를 좋아했다. 나는 겁이 많아 올라가지 않고 구경했다. 그런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만 그 아이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가지가 부러져 땅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얼굴이 터져지고 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 붉게 물든 얼굴이 내 눈에 아른거린다. 나는 당장 그가 죽을 것 같았다. 사람의 생명이 참 긴 것 같다. 그 아이는 다행히 아무 탈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감나무 밭 가운데는 우물이 있었다. 물이 얼마나 찼는지 한 여름에도 얼음 같았다. 한참을 뛰어놀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면 여기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물을 마셨다. 감나무 그늘 아래 불어오는 바람과 시원한 물은 한 여름에 불타는 목을 식혀주었다. 그리고 배고픔도 잊었다. 최악의 가난이었지만 내게는 인정 많고 마음씨 착한 이웃들이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그들의 사랑이 나의 어릴 적 가슴을 만든 것 같다.

keyword
이전 06화나를 향한 나의 첫 반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