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룻배

나의 첫 항해

by Peter Choi

내가 아주 어렸거나 태어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라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할아버지께서 한때 나룻배를 소유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 배는 읍내로 빨리 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태워주고 배 삯을 받으셨다고 했다. 어떤 이유인지 내 기억 속에 있는 세상에는 그 배가 없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참 아쉬웠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외삼촌이 개척교회를 시작하셨다. 외삼촌은 이전에 계시던 교회에서 꽤 목회를 잘하셨고 교회에서 대우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개척의 뜻이 있어 재산을 팔아 체육관을 얻어 교인이 거의 가족들이었던 6명으로 교회를 시작하셨다.


우리 집은 매우 가난했지만 내가 아직 기억하고 있는 엄마는 주일이면 쌀 한 되를 퍼서 이 나룻배를 타고 강 건너 쌀집에 그것을 팔아 그 돈으로 헌금을 하셨다. 사택도 없이 교회 한쪽 모퉁이에 사셨던 외삼촌은 그래도 교인들 특히 대학생들이 오면 꼬박꼬박 식사 대접을 하셨고 엄마는 그 일을 도왔던 기억이 난다.


그땐 어려서 교회에 왜 가는지 몰랐다. 그냥 영문도 모르고 엄마 손을 잡고 따라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나룻배를 생각하면 내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엄마의 마지막 인생이 떠오른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시며 다니셨던 엄마를 생각하며 마음 한편으로 위로를 받는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이 배는 내가 학교를 다니는 하나의 교통수단이었다. 나는 배 타는 것이 좋았고 뱃사공 아저씨는 내게 노 젓는 법 그리고 상앗대질 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때 나는 상앗대를 삿대로 불렀다. 사공이 없을 때는 동네 어른이나 청년이 노를 젓고 삿대질을 해서 건너 다녔다. 중학교 때 나는 꽤 체력이 좋았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히 배를 몰고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런데 여름이면 비가 많이 왔다. 홍수가 나면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은 꽤 위험했다. 그날도 나는 배를 타고 건너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야만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은 많이 불었고 물살은 세었다. 그런데 내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제까지 수도 없이 잘 건널 수 있었고 이번에도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맑고 깨끗했던 낙동강은 홍수로 황토색의 탁류가 되어버렸다. 홍수에 뽑힌 나무들도 떠내려왔다. 나는 삿대로 배를 조금씩 움직였다. 물살은 생각보다 세었고 삿대가 닷지 않는 지점에서 노를 젓기 시작했다. 약간 힘에 부쳤다.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에 무사히 건넜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 스스로에게 용기를 내라고 다독였다. 배가 조금씩 물살에 떠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잽싸게 약간 상류로 향하도록 뱃머리를 돌려 힘 있게 노를 저었다. 조금씩 목적지로 가까워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결국 무사히 홍수를 뚫고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용기를 낸 것이다. 건너야만 집에 갈 수 있었고 나는 이전의 수많은 경험을 살려 그 범람하는 낙동강을 건넜다.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중학생 혼자 배를 저어 강을 건넜다고 하면 아마 칭찬은커녕 혼쭐이 날 것이다. 내 아들이라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모님을 신고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때 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나는 중학생이었지만 생존을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야 했다.


나룻배에는 뱃사공이셨던 할아버지, 할아버지보다 먼저 천국으로 가신 엄마의 마지막 추억 그리고 나 스스로 생존을 위해 큰 용기를 내었던 그런 기억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지금 그 나룻배는 사라졌다. 그러나 나룻배의 추억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사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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