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그땐 왜 그를 몰랐을까

by Peter Choi

아버지가 세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는 신혼이나 다름없는 나이에 아내를 잃으신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이었던 아버지를 키우셨다. 일본 식민치하에서 그냥 살아가기 도 힘드셨을 텐데 어린아이를 홀로 키우신 것이다. 6.25 전쟁을 겪으시면서 원래 이북 해주에 계시다가 월남하셨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어린아이를 할아버지는 키워내셨다.


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나 애틋한 마음이 그렇게 내 마음에 남아 있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수많은 세월 동안 당한 고통은 이렇게 회고록을 쓰면서 조금씩 가슴이 저며오기 시작한다.


사고 후 할아버지는 본의 아니게 가족에게 어려움을 주셨다. 속상한 아버지는 그 때문에 술을 달고 사셨는지 모른다. 다치고 싶어 다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할아버지는 몸도 정신도 온전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놀림도 당하셨고 철없을 때 동생들까지도 놀렸다. 아버지도 할아버지께 한없이 잘하시다가도 속상하실 땐 큰소리로 싸우시는 것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항상 가정에 평안을 깨는 그런 존재처럼 느껴져 내 가슴에 그런 괴물 같은 감정이 생겼나 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는 책을 참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셨다고 언제나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집에 책이 없어서 그렇지 책이란 책은 모두 다 읽으셨다. 나나 동생이 학교에서 교과서를 받아오면 할아버지는 돋보기를 끼시고 며칠간 밤새 읽으시며 결국 다 읽으시고 또 읽으셨다.


아버지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셨다. 외할머니는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교회에 다닐 것을 말씀하셨고 성경 책도 주셨다. 아버지는 성경 책을 집어던지며 신앙을 거부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 유일하게 있었던 성경 책은 겉표지가 없고 몇 장 떨어져 나간 성경이었다. 나도 그땐 관심도 없었고 그 책이 무슨 책인지도 몰랐다. 세로로 빽빽하게 깨알같이 씐 성경 책이 손이 갈 이 없었다. 그런데 이 성경을 유일하게 읽으셨던 분이 할아버지셨다. 할아버지는 그 책이 닳고 또 닳도록 읽으셨다.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뜨럭에서 넘어져서 허리를 다치셨고 그 후 허리에 등창이 나셔서 앓다가 돌아가셨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나는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늘 할아버지를 전도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아픔으로 남았다. 하지만 성경을 수도 없이 읽으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복음을 믿으셨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마음의 위로를 받곤 한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내게는 잘해주셨다. 그때 '치로 사업'이라고 불렀던 공공 근로로 돈을 가끔씩 버셨다. 아무에게도 돈을 주지 않고 꼬깃꼬깃 주머니에 숨겨두었다가 내게만 천 원씩 꺼내 주셨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무척 좋아하셨다. 방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셨는데 지금 내 폐가 멀쩡한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담배 중 제일 싼 것은 그냥 개비로 되어있지 않고 담배만 봉지에 가루만 넣어서 파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종이에 말아서 할아버지는 피우셨다.


그러다가 개비로 된 담배 중 제일 싼 담배인 새마을 담배를 피우셨다. 스펀지처럼 된 담배 필터는 없었지만 개비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가끔 돈도 떨어지고 담배도 떨어지면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 꽁초에서 담배가루만 빼어내어 종이에 말아 피우셨다. 나도 가끔씩 할아버지께 꽁초를 주워다 드린 적도 있다. 할아버지는 칠순이 되시는 해에 돌아가셨는데 좀 빨리 돌아가신 것은 사고도 있지만 이 담배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게 할아버지는 방안 가득히 담배를 피우시는 가끔 이상한 말씀도 하셨던 분이다. 담배 연기만큼이나 좀 답답한 느낌이 들었던 할아버지셨다. 하지만 오늘 느끼는 할아버지는 어린아이를 홀로 키우신 책임 있고 정이 많으셨던 할아버지이다. 내게만 큼은 쌈짓돈을 주시며 언제나 나를 찾으셨고 자랑스러워하셨던 분이다.


왜 할아버지를 그땐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했을까? 평생을 외로움과 아픔 속에 사셨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참 아프다. 또 다른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생각하며 좀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후회하면 무엇하겠는가? 이미 지난 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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