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강하게 한 것들

고난은 선물이다

by Peter Choi

아버지께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 못했고, 가진 땅도 대부분 모두 팔아버렸기에 남의 집 농사일을 해주고 품삯을 얻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공납금을 제때에 내지 못해 늘 교무실에 불려 다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일 년이 지나자 아버지께서 새어머니를 모시고 오셨다. 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좋은 기억들로 인해 새어머니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어머니의 성격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는데 한몫했다. 나는 눈치가 있어 집안일을 알아서 잘했지만 바로 밑에 동생은 눈치가 없고 말대꾸도 꼬박꼬박 해서 언제나 혼이 많이 났다. 열 가지 잘해도 한 가지 때문에 늘 혼이 나야 했다. 화를 잘 내는 것은 오랫동안에 깊이 몸에 베이신 듯했다.


그 당시 집은 상수도가 없는 집이라 나와 동생은 손수레에 커다란 고무 다라를 싣고 학교에 가기 전 새벽에 일찍 일어나 물을 길어놓고 가야 했다. 집에 물이 조금만 부족해도 혼이 나기 일쑤였기에 혼이 나지 않기 위해 알아서 물을 집에 통마다 꽉꽉 채워두었다.


어머니는 식당에 일을 다니셨기 때문에 가사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는 밥을 했다. 부엌에 불을 지펴 밥을 하는 것은 지금도 자신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밥과 솥 바닥에는 노랗게 누룽지가 눌어붙어 있도록 밥을 할 수 있다. 누룽지는 간식이여 별미였다.


빨래도 했다. 남의 집에 얻어온 옷들이 대부분인 옷들은 식구가 많아 큰 고무 대야에 한가득이었다. 여기에 세제를 풀어 발로 오랫동안 밟아 물로 헹구어 내면 빨래가 된다.


학교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거리가 초등학교는 4킬로미터, 중학교는 6킬로미터 정도 되었는데 중학교에 가는 길은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해서 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때 단련된 허벅지는 지금도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나는 걷는 것이 좋다.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는다. 어떤 날은 여섯 시간을 꼬박 걸은 적도 있다. 아내는 조금만 걸으면 지쳐서 나의 산책 파트너로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렇게 튼튼한 다리는 바로 어릴 적 가사와 통학하면서 생긴 것이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맞춰드리려고 했던 인내의 순간들 그리고 힘든 가사와 험하고 먼 길을 통학하면서 겪었던 육체적인 어려움 들은 나의 마음과 육체를 모두 강하게 만들어 주었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중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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