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친한 친구가 제법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착한 친구였던 것 같다. 나는 중학교 다닐 때까지 한 번도 참고서를 사서 공부한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집은 가난했다.
비록 키는 작았지만 목소리가 꽤 안정감 있고 대하기가 참 편한 친구가 있었다. 그의 이름에서도 금방 알 수 있지만 그는 참착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선대'인데 한자가 실재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나는 착할 선자에 큰 대로 기억하기로 했다. 그의 성품에 딱 맞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시험 전날이었다. 그가 나에게 사회 참고서를 빌려주었다. 자신도 공부해야 하는데 내게 빌려준 것이다. 괜찮냐고 물으니 공부를 이미 했다고 괜찮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쥐어보는 참고서였다. 그런데 생각보단 참 깨끗했다. 때라도 묻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집에 돌아가서 나는 참고서를 그냥 쭉 읽었다. 특별히 기억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할 시간도 없었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어차피 이제까지 없이도 공부했는데 이게 어디야 하며 편안하게 읽었다.
이전에 점수가 썩 좋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잘 받아야 했다. 많이 공부했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백 점을 받은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와 체육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참고서의 힘이 이 정도인가 했다. 친구가 참 고마웠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고 하나는 나루터로 가 배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이 친구는 나루터 가는 길 쪽에 집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친구는 자기 집을 지나 나루터 있는 곳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친구는 강 건너를 가리키며 너의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한참 사춘기인 나이라 친구에게 초라한 외딴집을 가리킬 수 없었다. 대충 이상한 곳을 가리키며 얼버무렸다.
친구 하면 늘 생각나는 친구가 또 있다. 지난번 함께 씨름하다가 나의 쇄골을 부러뜨린 친구다. 친구는 욕을 하거나 화를 낼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아이큐가 150이 넘어 기억력도 좋았고 항상 반에서 일등을 지키는 편이었다. 몸과 마음을 비비며 함께 했던 친구이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예상대로 그는 서울대학교 공대에 들어갔다. 3학년에 그 어려운 기술고시를 일찌감치 패스했고 졸업 후에는 대덕 연구단지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친구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을 나중에서야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 이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내가 갈 때마다 반갑게 맞아 주시던 그의 부모님도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의 친구도 이 친구도 세상을 떠났다. 아무리 좋은 재능과 명석한 두뇌 그리고 훌륭한 학벌과 직장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오늘 죽으면 바로 한 줌의 흙일 뿐이거늘... 이 두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행복했던 순간과 인생의 의미가 어우러져 묘한 마음이 지금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