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1막을 시작으로 역경의 2막을 지나 폭풍 같은 3막으로..
나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온라인 광고 업계가 막 시작된 시기에 일을 시작해서인지
정확한 업무 스콥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많~~~은 일을 알아서 해야만 했다.
사수가 갑자기 이직을 하고
대리 연차에 대기업 연간광고제안 PT를 해야만 했던 시절..
아마도
정신없던 시기였기에 그런 큰 기회가 주어졌으리라~
내가 기획한 내용으로 웹사이트가 만들어지고
배너 광고가 라이브 된다는 사실만으로
매일 신나는 하루하루였다.
웹디자이너와 개발자, 그리고 AE이자 카피라이터 역할과 기획을 도맡아 하던 나.
우리는 청명한 가을날에 회사 옥상에서 하늘을 보며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그땐 격주 토요일 근무를 했는데 (80년대 아님 주의)
다 같이 컵라면을 끓여 먹고 놀다가 1시에 퇴근하는 순간이 왜 그리 행복했는지..
월드컵 때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근무하다가 배너를 걸고 다 같이 시청으로 길거리 응원을 갔다.
일하며 놀고, 회의하면서 밤새고
굵직한 연간 PT 준비하다 보면
한 해가 저물었다.
사회생활이 이런 거라면 100년도 하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사회초년생의 마냥 신나던 사원, 대리 시절을 지나 승진과 이직을 했다.
그 시절 나는 출퇴근 지하철 왕복 2시간이 걸렸는데
나에게 그 시간은 일에서 분리되어 매일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유일한 쉼의 시간이었다.
(그때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책을 읽으며 지하철에서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을 떠올리면
지하철의 잔잔한 소음
1곡만 무한반복재생하며 귀에 박혀버린 노래의 후렴구
출입문 앞에 끼여서 가는 형편(?)에도 내가 서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광고회사 다니는데, 야근은 당연한 것이고
늘 피곤하지만 더 많이 배우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원래 체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악으로 깡으로 버텨낸 나날.,.
그저 일이 재미있어서...
야근하다 먼저 들어가면 선배들이 또 다른 아이디어로 밤새 토론할 텐데..
그 신나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피곤한 몸으로 지하철에 올랐고
끼이듯 몸을 욱여넣고 겨우 한숨 돌리던 찰나
아.....................
여기 지옥이다.
내가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나는 여기서 죽.을.수 있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주저앉았다.
잠시 핑~ 도는 어지러움 이후에 눈을 떠보니 몇몇 분이 부채로 바람을 불어주고,
괜찮냐고 물어봐 주셨다.
상황파악을 해보려고 주위를 둘러보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위해
어떤 분은 손수건을 내어주고 부채질을 해주고, 물을 권하셨다.
어느 순간 갑자기 "픽"(?) 하고 쓰려졌다고 한다.
믿기지 않았지만, 모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우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로 손을 들어 택시를 타고 출근.
야근.
야근.
야근.
며칠 밤을 새우고 주말이 되었지만,
토요일은 동료의 결혼식 참석, 주일에는 신청해 둔 토익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이직을 위해 토익점수는 필수였다.)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갑자기 몰려온 기묘한 기분
난생처음 느껴지는 이질감.
얼굴 주변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시험을 우선 마쳐야 한다.
접수비를 이미 냈고, 중간에 나가면 점수가 안 나온다.
혹시 지난달보다 더 높게 나올지도 모른다.
버텼다.
온 신경이 얼굴로 향하고 있었지만, 입술을 꼭 다물고 문제를 풀었고 답을 표기했다.
시험을 끝내고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보니
아................................
내 얼굴이....
입이 돌아간 나의 병명은 "안면신경마비"
앞으로 입은 더 삐뚤어지고 원래대로 얼굴이 안 돌아올 수도 있으며
얼마나 더 진행될지 알 수 없다.
과로와 스트레스, 수면부족이 원인으로
이미 발병한 이상 정상적인 회사 출근과 업무는 힘든 상황이 닥친 것이다.
진단을 받은 첫날 가장 먼저 든 생각.
"내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
담당 광고주들에게 어떻게 말하지?
누가 내 업무를 대신하려면 인수인계도 해야 하는데..."
바로 회사로 가서 노트북 안의 업무파일 정리와 인수인계를 준비하고
광고주들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니 나의 입은 완전히 돌아갔고
물을 마시면 바닥으로 물이 주르륵 새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치료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의사소통이 점점 힘들어지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나는구나. 열심히 일한 나에게 결과는 처참하다.
"맨날 야근하고 일만 하는 광고회사 안 다녔으면 이런 불행은 없었을 텐데.. "
일도 회사도 다 싫고 그만하고 싶어졌다.
광고를 업으로 지내온 시간 동안 가장 길게 쉰 기간이 이때다.
6개월간 치료와 재활
인생에 대한 고찰과 방황
미움과 갈망으로 고민에 고민을 하던 시기.
이때,
도망칠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
좀 더 편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조건이 딱 갖춰진 시기.
7~8년 차 한창 일하기에 최적인 황금연차
새롭게 무엇인가 시작하기에도 늦지 않았던 시점.
사회초년생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했다.
광고가 하고 싶어서 졸업과 대학원, 취업까지 그냥 도전했었기에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많은 고민을 했던 시기다.
마침내.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주어졌고,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할 마지막 기회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잘해볼 자신도 있었는데...
선배의 전화 한 통으로
나의 운명이 바뀌었다.
내가 담당했던 광고주의 대행을 새로 맡게 된 대행사.
이전 온라인광고대행사와는 완전히 다른 판..
나의 커리어에 딱 맞는 시점이라 추천했다는 선배의 말.
종합광고대행사.
이렇게
나의 광고 인생은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재미있어서 올인했다가 건강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멀리 떠나, 헤어지고 싶었는데..
다시는 밤새면서 일만 하고
연말을 경쟁 PT 준비와 함께 보내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버린 운명.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 나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