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 걸음을 보채다 헤드라이트 앞에 멈추어 섰다
어떤 부름처럼, 어떤 약속처럼
헤드라이트는 나의 저녁에 끼어들었다
그 낯선 불빛 속에서 나는 어떤 무표정이었을까
어디에도 들추어지지 않았던 건조함 같은 것이 드러났을 것이다
몇 해 전 밀려갔던, 사랑이라 불리지 못한 기억들과 함께
잠깐 쓰라렸다
불현듯 환하게 사라지고 싶단 생각에
더 이상 쓰라리지 않게 되었다
나를 비추는 헤드라이트 앞에서
나는 감추어두었던 마음을 잠시 들키기로 한다
감상하듯, 너그러운 무표정으로
아주 잠시일 뿐이므로
마침 약간의 적막이 필요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