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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 에이전트 May 19. 2018

카오스

노동의 시간


출국 이틀 전이다. 아마도 우리 에이전시가 바르샤바 도서전에 참가하는 유일한 한국 업체일 듯하다. 작년에는 한 곳이 더 있었으나 참가사 리스트를 확인한 바로는 올해 우리만 참가하는 것 같다. 함께하는 한국 업체가 많다고 나쁠 것도 적다고 좋을 것도 없다. 각자 맡은 업무에 충실할 뿐이다. 우리도 올해 참가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동유럽 진출로로 폴란드가 맞는지에 대한 확신을 지지할 만한 어떤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에 이렇다 저렇다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기에 한 번 더 실험하기로 해본 것이다.


바르샤바 도서전은 우리 도서전과 규모면에서는 많이 차이가 나지만 목적은 비슷하다. 그쪽이나 우리나 독자에게 책을 판매하는 것에 더 큰 의도가 있다. 그래서 서점도 많이 나오고, 자국 출판사들도 저작권 거래보다는 책을 판매하는 데 더 힘을 쏟는다. 그래서 직접 현장에서 어떤 미팅을 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독자들을 비집고 들어갈 틈도, 계산하는 관계자를 불러 말 한마디 나눌 기회도, 즉석 미팅을 할 공간도 없다. 사전 약속은 필수다.


그런데 이 폴란드라는 나라가 그렇게 여유로운 나라가 아니다. 자본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아주 소극적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정정하자면, 아시아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라고 고치겠다. 한류 열풍은 출판계까지 뚫지 못했다.  공감대가 부족하고 홍보도 부족하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들에게 아직도 미지의 나라고, 태국, 베트남 등지에 버금가는 매력도 뽐내지 못한 나라다.


출판물은 문화 경제 선진국의 것이 우선 검토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가 좋은 출판물을 만들어도 우리 문화와 경제가 이에 앞서 알려지지 않으면 그 자체로 장애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을 잘 이해하는 것도 오히려 선진국들이다. 그렇게 보자면 동유럽보다는 서유럽이나 북유럽에 더 힘을 쏟는 게 맞다. 물론 쏟고 있다. 그럼에도 동유럽에 계속 얼굴을 들이미는 건 어떤 이유에서인지 시원하게 설명하기가 힘들다.


어쩌면 이들도 우리와 같은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예전의 우리가 다른 나라의 출판물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변화를 꿈꿨듯이 이들 안에도 그러한 변화가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우리가 해줄 수 있는지가 의문인 것이다. 공감대가 생겨야 서로에게 관심이 생기고 그래야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는데, 폴란드와 우리의 간극은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멀다.


서로를 아는 게 하루 이틀만에 되는 것도 아닌데 그 긴 싸움 앞에서 주저하는 건 무엇일까. 태만일까 이기일까 불안일까 맞불일까 뭐 때문일까.


일하는 출판사의 도서 몇 종이 올해 볼로냐 라가치 상을 수상했기에 도서 앞에 붙여둘 스티커를 준비했다.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토록 무력해지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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