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상 속에 담긴 철학이야기
"이유식은 잘 먹어요? 응가는 하루에 몇 번 해요? 낮잠은요? 우리 애는 요즘...."
오랜만에 만난 또래 엄마들의 푸념이 이어졌다. 비슷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는 우리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자기 아이의 근황과 육아 고민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사실 얘기를 나누는 구성원만 달라졌을 뿐, 얼마 전에 만난 또 다른 그룹의 사람들과 나눴던 이야기랑 내용은 똑같다. 결론도 비슷하다. "육아는 정말 힘들어요. 아유~ 애 키우는 게 다 그렇죠 뭐~"
이렇다 할 결론도 없는 이야기를 도대체 몇 번을 반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하더라도 공감지수가 90% 이상은 되는 ‘육아 수다’는 스트레스 해소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만, 뭔가 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불편하다.
그날 밤, 아이의 꿀잠을 위한 목욕 의식을 하고 정성 가득한 엄마표 이유식을 먹이고, 그간 단련해온 노련한 스킬을 동원해서 아이를 재웠다. '이쯤이면 나도 프로다.' 생각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적막이 흐르는 조용한 집에 혼자 앉았다. 남편은 오늘도 야근이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길래...... 누구를 만나건 아이가 먹고 자고 싸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걸까?
아니야. 다른 이야기도 하지. 육아 무용담이나 아이의 발달 상황에 대한 걱정, 유아용품 쇼핑 정보 교환, 독박육아 하고 있는 신세 한탄, 그리고 시월드(시댁) 이야기 같은 ‘도긴개긴’인 얘기들이 고작이라서 문제지만.
예전에는 내가 내 인생의 중심이었는데, 아기가 태어나고서부터는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소원해진 느낌이다. 물론, 아기가 중요한 건 인정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뭔가가 크게 잘못됐다.
어른들은 "힘들어도 아기 키우고 할 때가 좋은 거야.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때가 좋았다 할 거야." 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아무리 힘든 순간도 다 지나가기 마련이란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나만 겪고 있는 증상은 아닌 듯해서 일단은 안심이 됐다. 하지만 불길하다. 이대로 내 인생에서 ‘나’는 없어지는 걸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요 녀석~ 미운데 미워할 수가 없다.
그래~!! 육아에 있어서 절대 불변의 진리는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육아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