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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밀 Dec 19. 2021

‘엄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육아 일상 속의 철학이야기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행복한가?

그런 회의감이 드는 날들이 있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다가도 불쑥 고개를 내미는 삶에 대한 회의감 같은 것. 관계에 지치고, 내게 주어진 역할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 내 자신은 없고 빈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 그냥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면 드라마나 예능, 웹툰 같은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어지도록 잠을 청하기도 한다. 밖으로 나가 쇼핑을 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어본다. 비록 공허한 웃음일지라도 순간의 즐거움은 위로가 된다.


육아가 힘든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아이를 잘 다루거나, 아이와 교감하는 방법’을 몰라서라기 보다는 ‘육아에 있어서 나의 정체성, 다시 말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힘들었다.


길을 잃었을 때마다 전문가나 선배맘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 책들을 찾아 읽어봤지만, 이렇다 할 답을 찾지는 못했다. 좋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지만, 오히려 ‘나는 왜 저들처럼 잘 해내지 못하는 걸까?’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대부분의 실용서나 자기 계발서들이 그렇다. “나는 이랬어. 내가 발견해낸 좋은 방법을 알려줄 테니, 본인의 상황에 맞게 잘 적용해보도록 해.”라는 식인데, 사실 ‘나에게 적용’이라는 부분이 가장 어렵다. 공부비법을 안다고 해서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이런 식의 실용서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절실히 필요한 조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처럼 아직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얘기들일뿐이다. 물고기를 왜 잡아야만 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낚시법을 알려주며 배우라고 다그치는 격이다.


왜 낚시법을 배워야만 하는지, 잡은 물고기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또는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기껏 배운 낚시법도 무용지물이 된다. 실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 아직도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면, 그래서 우울함을 느끼는 나날들이 늘어간다면… 새로운 육아 비법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는 스스로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잠깐의 위안이나 짧은 즐거움으로 도피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나의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받아들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방법도 없다. 그저 끊임없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10여 년의 세월을 육아와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했다. 비록 미완의 결론이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작은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아이에게 맞추어야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나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아동심리학자나 교육학자들은 옳지 않다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육아 방법은 ‘나’를 기준으로 아이들을 이끄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내가 중심이 되고 보니, 좋은 육아방식들을 적용하는 것이 훨씬 쉽다. (꼰대식으로 나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아이의 성향을 고려해 적당한 방식을 선택하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는 의미이다.)


남들에게 끌려다니는 인생, ‘나’는 없고 남편이나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정의해야만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상이 지긋지긋하다면… 분명 바쁘게 육아에 매진하고 있음에도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면… 용기를 내서 스스로와 꼭 마주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너 자신을 알라(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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