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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밀 Dec 12. 2021

좋은 엄마? 그게 뭔데??

육아 일상 속에 담긴 철학이야기

네다섯 살 무렵, 나는 동네 피아노 학원 유치부에 다녔다. 80년대 후반이던 당시에는 어린이집 같은 건 거의 없었고,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에는 동네 미술학원이나 피아노 학원 같은 곳에 다니곤 했다.


선생님께서는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육아수첩 같은 곳에 써서 집으로 보내주었는데, 거기 이런 내용에 적혀 있었다. (아쉽게도 당시의 일이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해밀(필명)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엄마요~”

“왜 엄마가 되고 싶어요?”

“엄마가 좋아서요.”

Oh, my Goodness!! 이럴 수가~!!!!!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좋.아.서. ‘엄마’가 되고 싶었다니!?!? 그런데, 문제는 좋은 엄마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이렇다 할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좋은 엄마는 어때야 할까?
이상적인 엄마가 실재하긴 할까?
그저 관념적인 이상은 아닌가?
좋은 엄마의 기준은 나인가, 타인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보태어 고민해봐도 역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답을 찾으려고 집착했던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공교육의 테두리 속에서 무려 12년 동안 정답을 찾는 교육을 받았고, 대학을 다녔던 2~4년 정도의 기간 동안에는 암기한 것들을 적당히 편집해서 모범답안을 작성하는 교육을 받았다. 심지어 직장에서는 상사가 지시하는 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미덕이라 배우며 회사생활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굴(학교나 직장) 속에서 정답은 늘 정해져 있었고, 우리의 역할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또 정답 찾기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자애롭고, 화내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며, 건강한 음식을 먹이는 엄마.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될만한 교육 환경을 제공해주고, 미래의 인재상에 걸맞은 창의력과 주도력을 키워줄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엄마. 친구 같으면서도 필요할 땐 단호하게 아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완벽한 엄마.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좋은 엄마의 이상적인 모습은 세상이 만들어낸 선입견, 편견일 뿐이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어떻게 저런 단순화된 모습의 ‘좋은 엄마’로 표현될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동굴 속에 갇혀서 ‘동굴의 우상(좋은 엄마에 대한 허상)’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바보들 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타고난 그릇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단순한 진리 옆에 두고.. 동굴  사람들이 믿는 허상, 그림자를 는다. 때로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아이에게 미안함을 끼기도 한다.  그런 죄책감을 감추려고 비싼 학원에 보내고, 좋은 옷을 사서 입히며 부모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위안 삼는다.


그렇게 우리는 동굴 속에 갇혀서 진짜 좋은 엄마가 되는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좋은 엄마’ 말고, 내 안에 있는 진짜 ‘좋은 엄마’, 내 아이가 좋아할 만한 ‘좋은 엄마’의 모습을 찾아보아야겠다.


동굴의 우상: 플라톤의 비유에 따르면 동굴에 갇힌 인간은 동굴 속에 켜진 촛불로 인해 벽에 비추인 그림자를, 즉 실재 세계의 “가상”을 진리로 여긴다. 그리고 자신들이 본 그림자만을 진리라고 여기면서 오류를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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