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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밀 Dec 15. 2021

“명품 육아”를 소비하면 일어나는 일

육아 일상 속에 담긴 철학이야기

나는 나쁜 엄마였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육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늘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엄마 행세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명품 육아의 시작, 루이뷔통 기저귀 가방]

10여 년 전, 첫 아이를 낳고 100일쯤 지났을 때, 처음으로 문화센터에 갔다. 베이비 마사지 수업을 듣기 위해서였다. 백화점 문화센터에 가니 대부분의 엄마들이 루이뷔통 백을 기저귀 가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얼마 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남편을 졸라 루이뷔통 가방을 샀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로 소비를 합리화하며…


[책과 교구도 비싸고 좋은 것으로만~]

또래 엄마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다 보니, 아이들의 발달에 좋다는 각종 교구와 책에 대한 구매 고민을 공유하게 됐다. 한참을 인터넷 검색으로 맘 카페와 블로그 글들을 읽어보았다. 지름신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부모교육을 해준다는 판매사원들을 만나서 얘길 들어보니, 균형 있는 발달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었다. 귀하고 귀한 우리 아이, 내가 해줄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당연한 것이라고 믿었다. 할부로 몇 백만 원짜리 교재와 교구들을 사들이고, 거실에 진열했다. 너무나 뿌듯했다.


[사교육의 시작, 헤어 나올 수 없는 늪]

방문 교구 수업을 시작으로 사교육의 길에 들어섰다. 아이도 비싸면 좋은 것을 아는 건지 신기하게도 재미있어했고, 만족스러운 퍼포먼스도 종종 보여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사교육은 영어유치원으로, 또 다른 고가의 책으로, 학습 프로그램으로 번져갔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고, 아이가 기대만큼의 천재성을 보이지 않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이다. 어르고 달래며 학습을 시키다가 나중에는 화도 났다.  그만두고 엄마표 교육을 시켜봐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


[블로그 속 멋진 엄마들을 닮고 싶어서…]

엄마표 육아로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보고, 육아 서적도 닥치는 대로 사서 읽어보았다. 그중에서도 책 육아와 엄마표 영어, 하브루타,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것들을 하기 위해서도 사야 할 품목들이 너무나 많다. 블로그 속 엄마들을 흉내내기 위한 소비가 또 시작됐다. 아이는 또 영문을 모른 채 새로운 육아방식에 적응해야 했다.

[외국에서도 한국 엄마들의 교육열은 독보적이라…]

이번에는 해외로 나갔다. 남편의 해외파견근무 때문이었는데, 설렜다. “나도 이제 외국물 좀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내가 살게 된 곳은 호주 시드니였는데, 이곳에서도 한국 엄마들은 가장 교육환경이 좋은 동네에 모여 살고 있었다. 나도 자연스레 그 속에 섞여 살아가게 됐는데, 수영부터 시작해서 피아노, 바이올린, 중국어 등등 시켜야 하는 게 뭐가 그리 많은지…


게다가 호주는 우리나라 같은 학원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서 대부분 개인 레슨이나 그룹 과외 형식으로 진행됐고, 인건비가 높은 나라답게 레슨비도 굉장히 비쌌다. 하지만 남들 다 하는 걸 우리 아이만 안 시킬 수는 없었다.


[다시 한국, 지난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불안감]

남편의 해외파견근무가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연과 더불어 평온한 일상들을 보냈던 호주에서와는 달리 한국은 아주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의 학습 수준도 훨씬 높았다.


호주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우리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학습 수준이 한참 떨어져 있었다. 영어만 좀 잘할 뿐, 그마저도 한국식으로 학습했던 게 아니다 보니 어휘나 독해력은 그리 뛰어난 수준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한국식으로 시키기 시작했다. 학습지를 풀게 하고, 영어학원, 수학학원에 보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관두게 할 수 없었다. 아이의 학원 뺑뺑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금액의 비용을 지불했고,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이와 내 사이는 점점 나빠졌다.


철학이 없는 육아,

아무 생각 없이 남들 하는 대로만 쫓으며

불안감에 시달렸던 엄마.

내가 딱 그런 엄마였다.

“명품 육아” 그런 거 소비하지 마세요.
따뜻한 엄마의 말 한마디가,
함께 웃으며 놀아주고 안아주는 다정함이
아이는 더 필요함을 반드시 기억하세요.

아이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차라리 금융교육을 시키세요.
(금융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글에서 설명드릴게요.)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 :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밝힌 개념.​ 보드리야르는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에도 한 사람의 이상적 자아가 반영된다고 보았다. 때문에 누구나 명품 브랜드에 끌리며, 사람들은 명품을 구매하면서 상류계급의식을 느끼고, 명품 브랜드가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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