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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밀 Dec 31. 2021

이제 나도 마흔입니다.

육아 일상 속 철학이야기

오늘 아침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 데, 남편이 9살 둘째에게 물었다.


“오늘 엄마는 마지막 날인데, 뭐가 마지막인 줄 알아?”

“응~ 오늘 엄마 39살 마지막 날이잖아~

 내년부터는 마흔이야 ㅋㅋㅋ”

그러고는 둘이서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사실 최근 한 달 동안, 내년에 몇 살이 되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며 ‘쉿~’을 요구했던 터다. 마흔을 앞두고 괜스레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그 얘긴 하지 말라고 했더니, 되려 놀림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해가 지날수록 나이를 먹기 싫은 마음은 조금씩 커지는 것 같다. 나이와 비례하는 삶의 무게감 때문인지, 혹은 나잇값을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은 자책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마흔은 매우 상징적인 나이다. 아마도 공자께서 마흔을 불혹(不惑)이라며, 더 이상 세상 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 했던 말씀에 큰 영향을 받았으리라. 옛 성현의 말씀들 대부분이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되곤 하는데, 유독 ‘불혹’에 대한 이야기는 대중화되어 있다.


막상 마흔을 훌쩍 넘긴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마흔이라고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다며 별것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시간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구분 지어 놓은 어떤 경계일 , 삶의 연속상에서는  다른 차이가 없다. 그저 10년에   바뀌는 앞자리 수가 부담스럽고 싫을 


이제 마흔을 두 시간쯤 남기고 생각해보니 오히려 덤덤하다. 고작 9살 아이가 나를 놀려도 웃어넘길 수 있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작가라는 새로운 꿈에 도전할 수 있으며, 나이야 어찌 됐건 여전히 다가오는 2022년이 기대되므로…


마흔아, 어서 와~! 반가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내가 어쩌다 벌써 마흔인가’하는 억울한 마음이 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늘어난 흰머리와 주름들이 야속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이 듦의 즐거움을 찾아 떠나보아야겠다.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아갈 것이고, 아직 내게는 무수한 시간과 기회와 새로운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운이 좋은 사람은 젊은이가 아니라 일생을 잘 살아온 늙은이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는 신념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운수에 끌려 방황하지만, 늙은이는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느긋하게 행복을 즐긴다. (에피쿠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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