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일상 속 철학이야기
엄마는 원더우먼이었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도시락을 싸주셨다. 퇴근길에는 홀로 장을 봐오셨고, 손수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하셨다. 그러고는 숙제도 봐주시고, 잠들기 전에는 책까지 읽어주셨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한참 애를 먹고 있던 어느 날,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는 대체 어떻게 그 많은 걸 다했어요? 생색도 한 번 안 내고??” 그랬더니 엄마는 “그냥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지..” 하신다. “왜 그랬어~ 난 그게 고마운 건지도 모르고 컸잖아~”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을 고마워해야 한다고 배웠고 충분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완벽한 착각이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동안 엄마가 내게 무엇을 해주셨던 건지, 얼마나 많은 양보를 하며 사셨는지 제대로 알게 됐다.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역시 나는 못돼 먹은 자식이다. 엄마에 대한 고마움도 잠시, 내 아이들이 나처럼 자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직 어리니 당연히 모르겠지~’ 혹은 ‘나중에 크면 다 알게 되겠지~’ 같은 순진한 생각부터 버려야겠다 싶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물건을 사줄 때에도, 음식을 챙겨줄 때에도, 사교육을 시켜줄 때도 아이는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별것 아닌 일에 투정을 부리고, 제 입맛에 딱 맞지 않으면 토라지고,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하기 바빴다. 나의 역할을 생색내지 않았던 덕분에, 아이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용기를 내서 당연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자주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도록 가르쳤다. “물 가져다주셔서 고맙습니다.” “학교 가방 챙기는 일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불 빨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달 학원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간식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너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엄마의 일은 잠시 미뤄두고 한 일이라고 알려줬다. 너를 아끼는 엄마의 마음이고, 배려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애써 생색을 내며 설명하려는 나를 아이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여러 번 그러는 동안 조금씩 ‘그냥 당연한 일들’이었던 것들이 의미 있는 일들로 바뀌어갔다.
물론, 아이가 느끼는 고마움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길이 없다. 때로는 원치 않는 도움이라며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습관의 힘을 믿는다.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살아갈 것이므로…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위대한 미덕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미덕의 근원이 된다.(키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