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커피 한잔 하는 시간

한숨 돌리고

목요 미사 마치고 한국 마켓 들렀다가 바삐 돌아와 아이 점심 차려주고 나서 또 정신없이 정리를 한 후에 한숨 돌리는 시간.
며칠 만에 공기가 나아져 창밖 하늘이 파랗다.
동네 예쁜 동생이 사준 갓 볶은 콜롬비아 커피빈과 한국에서 온 케냐 커피를 블랜딩 해 하리오 웨이브 드리퍼로 내려 마시는 오늘의 커피.
날씨가 좋아서 파란 하늘이 테이블에도 비친다.

파란 하늘빛이 내 마음에도 들어온다  

스텐 드리퍼와 캐틀은 거울처럼 잘 닦아두면 새 것을 쓰는 느낌이다.
물론 늘 이렇게 닦아 두지는 않지만 그래서 한 번씩 잘 닦아 쓸 때 기분이 더 좋아진다.

게으른 아줌마가 한 번씩 깔끔한 척 하기 딱 좋은 아이템이라 하겠다  

내 눈에 보이는 부분만 깨끗해도 기분이 정화되는 듯하다  

물론 등 뒤로 펼쳐진 전쟁터 같은 상황은 이 시간만큼은 내 알바가 아니다.

Air quality가 보통이 된 어제 저녁.
음악을 들으며 동네를 걸었다.
달이 커다란 조명처럼 밝은 날.
나와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달빛을 온몸에 받으며 ‘달빛 샤워’라 칭했다.

집 근처는 불이 더 커지는 것 같아 걱정이 크다.
건조한 가을에 나는 큰 불들은 비가 내리면서 꺼지는데 이번 산불은 이른 시기에 나서 사람의 힘으로는 불을 끄기가 어렵단다.
저지선을 만들어서 저지선 안쪽이 다 탈 때까지 기다린다는데 (물론 가만히 기다리지는 않겠지만) 불이 생각보다 조금씩 더 번지는 모양이다.

샌프란시스코 쪽으로 넘어가는 84번 다리 들어가기 전 양쪽 공원 언덕이 새카맣게 탄 사진들이 며칠 전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아직도 자다가 매캐한 냄새에 깨기도 하고 하루 종일 연기가 동네에 차있기도 하다.
불은 멀리서 났는데 마치 옆집에 불이 붙은 듯 마음이 불안하다.
내 폐에 연기 알갱이들이 차 있는 듯 답답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도 눈이 보이는 연기도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
다행히 어제저녁부터 공기가 좋아졌다.
좋음 까지는 아니지만 보통은 된다.
그래도 창문을 마음대로 열 수 있어 너무너무 좋다.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맑은 공기가 이리도 감사할 일이었던가..
점점 작은 일에, 평범한 것들에 감사하며 살게 된다.
자연이 만든 위기에 삶이 소박 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지루하고 지루하게 흐르는 시간은  봄을 보내고 여름을 지나 가을로 온다.

이번 노동절 연휴에는 많이 더울 거라는데 이 더위가 지나면 가을이겠다.
멈춰있는 내 자리에 그림자처럼 시간이 지난다.
그 시간에 등 떠밀려 나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문득문득 깜짝 놀란다.

멍 하고 있다가 지나가 버리는 시간들의 꼬리를 잡으려 허우적댄다.

시간이 모르는 새 나를 여름 끝자락에 데려다 놓고 가을바람을 불어댄다.
나는 분명 봄에 서있었는데...


작가의 이전글 잠깐의 밤 산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