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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을 끓였다.

엄마 생각을 하며...

집 근처 베트남 마켓에 가서 사 온 양지머리를 생강과 양파  그리고 통마늘을 넣고 푹 끓여 육수를 냈다.

밤새 불린 마른 고사리와 토란대를 삶아 부드럽게 만들고

건져낸 고기와 함께 잘게 찢어냈다.

파를 다져 내어 둔 파 기름에 고춧가루를 넣어 고추기름을 만들어 찢어낸 고기와 고사리, 토란대를 무치며 소금으로 간을 해 재워둔다.


맑게 걸러낸 육수에 무친 양념을 넣고 한참을 끓이다 , 파와 마늘 그리고 숙주나물, 칼칼하게 고춧가루를 더 넣어 마무리.


이틀에 걸쳐 진하게 끓여낸 육개장에 밥을 한 그릇 척 말아 콧등에 땀이 맺힌 채 맛있게 먹는 아들을 보는 내 배가 부르다.


이 곳의 겨울 날씨는  한국의 늦가을과 비슷하다  

많이 춥다 하는 날은 한국의 초 겨울 정도 된다.

그리고 그 겨울은 12월 중순이나 되야 시작된다.

더딘 가을이 참 지루하게 지나간다.

그리고 이 곳의 계절은 한국과는 한 달 반 정도 차이가 나는듯하다

한국은 단풍이 예쁘게 들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데 우리 집 마당 살구나무는 이제 잎 몇 개가 노랗게 변했을 뿐이다.

12월이 다 돼가야 비로소 단풍도 들고 낙엽도 낙엽 답게 떨어진다.


캘리포니아에서 맞이하는 일곱 번째 가을.

내 계절감은 아직도 한국에 맞춰져 있어서 이 시기쯤 되면  더디게 지나가는 캘리의 어설픈 가을 안에서 홀로 심통을 내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낙엽도 좀 굴러다녀줘야 하는데,

이쯤 되면 비도 좀 내려줘야 하는데,

이쯤 되면 바람도 좀 스산해져야 하는데,


속절없이 좋은 날씨에 아직도 화려하게 피어대는 장미꽃,

포근한 햇살에 시리도록 푸른 하늘.

바짝 마른 공기 안에서 아직도 한참 기다려야 하는 비 냄새를 쫒는다.

날씨 좋은 곳에 살면서 배 부른 불평이나 한다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국의 가을이, 한국의 겨울이 너무 그립다.

워낙 가을을 타는지라 한국에 살 때는 집 앞 나무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이때쯤엔 마음이 붕 떠서 감정이 너울을 탔던 것이 몸에 배어 여름이 미련을 못 버리고 꼬리는 끌고 있는 이 곳에서 나는 또 혼자 가을 앓이 중이다.


가을 속에서 홀로 아픈 내 마음이 서늘하고 추워져서 끓인 육개장.

이제는 제법 엄마가 끓이셨던 육개장 맛 비슷하게 나오는듯하다.


그 옛날, 우리 엄마가 날이 추워지면 왜 그리 육개장을 한솥씩 끓이시는지 그때 엄마 나이가 돼가며 깨닫는다.


추운 날씨에 아침 일찍 출근하는, 학교 가는 자식들 배를 뜨뜻하게 채워주고 싶으셨을 엄마 마음.

그리고 육개장은 한솥째 끓이지 않으면 맛이 나지 않는 음식이라는 것도.


어리고 부족했던 나는 큰 솥 안에 들어있는 육개장의 양에 질려 안 먹는다 내빼기도 했다.

지금 내 아이들이 툴툴 거리는 것처럼.


아이들도 나중에 내 나이가 되면 엄마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남자아이들에게는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어딘가에서 먹게 될 육개장 한 그릇으로 이 아이들이 나를 떠올려 줄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감사할 일이겠다.


추운 날, 뜨거운 김이 오르는 육개장 한 그릇을 푸짐히 퍼 내 앞에 내주시던 지금보다 훨씬 젊은 엄마를 내가 지금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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