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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수다

술 좋아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요.
비가 내리는 날엔 술 한잔 생각이 난다는 말들.

조용히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1층으로 내려와 창문을 여니 부슬비가 참 얌전히도 내리고 있네요.
순간 커피 한잔 생각이 절로 나더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위를 혹사시키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공복에 커피를 복용해 보기로 말이예요  

물을 끓입니다.
물을 끓이다가 어느 순간 멍 하고 있는 전기 포트가 정신을 차리고 얼른 물을 끓이기를 기다리며 전동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넣고 갈아봅니다.
한국에서 쓰던 수동 그라인더 생각이 나면서 이리 편히 커피콩을 갈 수 있는 아침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지네요.

설레는 마음으로 드리퍼를 고르는 순간.
오늘은 너다 하며 예쁜 큰 아들이 선물해준 케맥스 미니를 콕 집어 드립필터를 꺼내 접어줬어요.
멍 하던 오래된 전기 포트가 장하게도 정신을 차려 잘 끓여준 물을 보물처럼 긴 시간 끌고 다니는 칼리타 동 드립 캐틀에 부어 봅니다.
그러고는 필터를 드리퍼에 끼우고 물을 부어 필터를 적셔줍니다.

좋은 향으로 뽐내는듯한 커피 가루를  필터에 부어 수평을 맞추고 천천히 물을  적셔봐요.
마른 커피콩 가루가 물을 흠뻑 머금으며 부풀어 올라 모양 예쁜 커피번을 만드네요.
커피번이 이런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면 오늘 드립은 반 넘게 성공입니다.

커피번이 물을 더 잘 머금게 조금 기다려줄 거예요.
밖에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와요.

이제 천천히 얇은 물줄기를 나선형으로 커피번 위에 부어줍니다.
커피가 내려오기 시작하네요.
천천히 기다렸다가 두 번 더 물을 부어줍니다.

기다리는 동안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 잔을 데워요.
데워진 잔은 내려진 커피가 덜 식게 도와주기도 하고 맛도 지켜준답니다.

다 내려진 커피를 데워놓은 잔에 따릅니다.
향기가 너무 좋은 게 왠지 오늘 하루 기분 좋은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살짝 씁쓸한 커피를 입안에 머금으니 커피 향이 너울을 쓴 듯 저를 덮습니다.
창 밖에 내리는 비.
향기로운 커피.
조용한 집.
오늘의 소확행이지요.

안 쓰는 컵들에 다육이를 심어 마당 한편에 두었는데 밤에 고양이가 어떨 때는 너구리가 때로는 파썸이 지나다니면서 컵들을 쓰러뜨려요.
낮에 컵을 바로 세워두면 밤에 저리 쓰러뜨려 놓습니다.
시골에 사니 이런 일들이 생기네요.
비가 그치면 다시 컵들을 세워 둬야겠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신기하게 하늘이 개입니다.
멀리 파란 하늘이 보이는 게 비가 그쳐가나 봐요.
비 내리는 때에 맞춰 커피를 마실수 있었으니 그것도 오늘의 행운입니다.  

며칠 내 구멍 지옥에 빠져 있어요.
다기 안쪽에 넣을 다망을 만드는데 스튜디오 월요팀이  같이 쓸 수 있게 많이 만들자 하다가 틈만 생기면 구멍을 뚫고 있는 저를 봅니다.
이제 고지가 눈앞이에요.  
당분간 다망 작업은 안 하려고요.
눈 앞에 보이는 것들에 다 구멍을 뚫고 싶은 마음이 생기려고 하네요.

일어나면 운동을 해야지 하고 가열차게 마음먹고 잠들었는데 이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이리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그래도 잠시 행복했으니 그걸로 충분하겠지요.

여성 호르몬이 열일을 하는 걸까요.
아침부터 감성이 뿜 뿜 하는 토요일입니다.
좋은 주말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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