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에 대한 고찰

2020년 1월 15일

by 선량한해달

"야, 코인에 10프로만 박아놔."

"왜? 뭔데 뭔데? 전쟁나?"

"닥치고 박아 놓으라면 박아놔."


'엣흐음!'


송차장의 헛기침 소리에 한 젊은 무리가 슬렁슬렁 해산한다. 전략의 송차장이래봤자 그들에게는 세상 돌아가는 생리를 모르는 불쾌한 꼰대일 뿐이다. 도통 사무실에 붙어있질 않던 그가 차장 승진 후 사무실을 누비고 다니는 통에 자리를 피하는 아랫 사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신성한 직장에서 말이야, 응? 도박질들이나 허고 앉아 있고. 그래, 안 그래 이과장?"

"네, 맞습니다. 왜들 그러는지..."


모바일로 코인 차트를 확인하는 이과장의 모습을 하루에 십 수 번은 본 옆자리 강사원이다. 차장의 의견에 그저 동의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애잔한 이과장의 모습이 우습고 가엽다. 강사원 입장에서는 출근 후 주식 거래 하는 데 한 세월을 보내는 송차장이나 코인에 사활을 건 어린 사원들이나 다 같아 보인다.


'저래서 집들은 언제 장만하려고.'


흡사 어머니와 같은 생각이 뇌주름을 스치자, 이러면 안된다. 아직은 엄마 입장이 될 때가 아니다. 아직 젊다 되뇌며 고개를 세 번 빠르게 가로젓는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찬 두 손으로 볼을 두 차례 치고는 다시금 업무 모드로 돌아간다.

"우리 예쁜 미리씨는, 응? 주식 하나? 응? 할 것 같은데."


송차장의 궁금증이 오랜만에 담을 넘어선다.


"아, 예에... 뭐."

"그치이? 그래 거 봐, 할 줄 알았어. 이런 사람들이 막, 응? 조용히 대박 나서 퇴사하고, 응? 우리 같은 것들은 정년하고 말이야."

"맞습니다, 하하하."


이번에는 또 언제쯤 가라앉을까. 이미 수없는 승진하이를 겪어온 강사원이다. 특별할 것도 없다. 저러다 말겠지.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승진 한 번에 기세등등한 그들과 같은 사람으로 보일까 하는 부분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바쁘던 강사원의 손이 급히 멈춘다. 언제나처럼 상상 속에서 최악의 상황을 그리고 가만히 대처를 해보는 것이다. 참담함에 저절로 눈이 감긴다. 그 조용한 때 반갑지 않은 직설적인 인사가 날아든다.


"강대리, 중도금 다 치렀나?"


시설처 기태림 차창이다.


"앗, 차장님. 안녕하십니까."


강사원은 이전 기관부터 끈질긴 연으로 이어진 기차장이 가끔 부담스럽다. 이 전쟁터 속에서 생각해 주는 유일한 사람인 것은 잘 알지만 이전 기관의 직함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 무엇보다 불편하다. 굳이 왼편 끝에서 오른편 끝까지 오는 것도 눈에 띄는 일이다. 항상 기차장의 움직임이 신경이 쓰인다. 강사원에게 있어 액세스는 조용히 살다가 떠나면 그만인 곳이다. 중도금 이야기는 송차장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았겠지만 옆자리 이과장에게는 들렸을 것이다.


'하필 저런 입 가벼운 인간한테...'


작은 걱정과 초조한 마음이 내달린다. 송차장이 기차장을 발견하고는 급히 강사원 뒤로 이동하니 별안간 두 차장의 대화가 시작된다.


"너 너무 하이한 거 아니냐?"

"그러는 기차장님은 우리 미리씨헌테, 응? 왜 추파를 던지고 그래 추파를?"

"이~야, 차장됐다고 송가가 맞먹으려 드네?"

"그러믄 , 뭐, 언제까지 형 형 그럴 줄 알았수?"

"참 내, 이 새*가. 축하한다."

"어이고오, 고맙네, 고마워."


두 중년의 어색한 우정씬을 마주하고 있자니 민망하다. 등 뒤에 병풍처럼 자리를 틀고 서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에 강사원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애써 귀를 차단하려는 찰나, 이과장이 끼어든다.


"미리씨, 집 샀어?"


'역시 들었구나.'


옆에 바짝 붙어 작은 눈을 크게 뜨고 순수한 유치원생인 양 초롱거리는 성인 남성이다. 강사원은 머릿속으로 혀끝을 세게 차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맞장구를 친다.


"아, 네. 청약 넣은 게..."

"와아, 씨. 어디?"

"아, 뭐... 수도권 구석에..."

"어딘데? 경기도? 인천?"


'이 자식은 뭘 이리 알고 싶은 게 많지.'


사적인 영역에 생각 없이 파고드는 해로운 인간은 딱 질색이다. 뒤의 두 병풍간의 대화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옆자리 인간까지 말썽이다. 운이 없는 하루다. 기가 빨려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기차장이 등장했을 때 이미 분위기 봐서 일어나려 마음먹은 강사원이었다. 어차피 두 차장의 대화가 시끄럽게 이어지고 있다. 기껏해야 중하 정도의 작은 소리로 나누는 이과장과의 대화는 멈출 운명인 것이다. 강사원은 이과장을 바라보고 목례를 하고는 타닥타닥 업무를 시작한다. 이과장은 모처럼 불타오를 수 있는 대화 타임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끝난 것이 어이가 없다.


"미리쒸, 거 너무 하네. 뭐가 이리 비싸!"


이과장은 간혹 본인의 목소리를 조절하지 못한다.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어디에서 나온 습관인지 간간히 자의식이 가득 들어찬 태도와 표정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강사원의 타이핑 소리가 멈추고 병풍 차장들의 대화도 멈춘다. 서로 마주보고 있던 두 차장의 머리가 앞으로 일제히 돌아가더니 이과장과 강사원을 힐끗거리며 번갈아 확인한다. 정적이다.


'탁!'


노트북을 접고 일어서는 강사원이다. 예기치 않은 형태로 이석 타이밍이 찾아왔지만 때는 지금 뿐이다.


"차장님, 커피 좀 사오겠습니다."

"어, 어어... 그래, 미리씨."


마스크를 내리고 마른 입술에 무색무취 립밤을 스윽 긋고 자연스럽게 사무실을 나서는 강사원이다. 엘리베이터로 빨려 들어가는 뒷모습을 세 남자가 홀린 듯 보고 있다. 시선은 강사원에게 고정한 채로 그들의 대화가 시작된다.


"이과장."

"넵."

"미리씨, 커피 안 마시지 않아?"

"...그랬나요? 잘 마시던데?"

"그럼 누구지? 정대린가?"

"정민씨도 커피 마니아잖아요."

"그치, 거긴 직접 원두도 갈드만."

"예?"

"..."

"차장님?"

"..."


이과장에게 아무 의미 없는 대화가 끝나고 송차장이 이과장을 두어번 힐끗 보더니 제자리도 돌아가 앉는다. 기차장은 자리를 뜨지 않고 앞에 앉은 이과장의 뒤통수를 한참 바라보다가 불현듯 소리를 내질러 이목을 집중시킨다.


"어어! 이거 틀렸다."

"네? 네에? 저요?"

"에에이, 이거 이러면 안 되지. 국토부 나갈 거 아냐?"

"아, 네... 그건 맞는데, 죄송하지만 어디가?"

"여기. 이건 영업 숫자잖아. 전략에서는 이렇게 뒷단위 지저분한 거 안 쓰는데."


기차장은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위에서 아래로 쭉 훑어 내리더니 키보드 근처까지 떨어뜨리고 가만히 이과장의 어깨를 짚는다. 그리고는 귓가에 감정 없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이다.


"너 왜 씨씨 거리냐?"

"...예?"

"우리 이과장은 자기보다 어른한테도 씨씨 거리나 봐."

"아, ...아닙니다. 제가 언제."

"그래?"


어깨를 꾹 짚고 일어서는 기차장이다. 이과장은 갑작스러운 귓속말에 어안이 벙벙하다. 기차장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그래, 거기. 영업 숫자는 리얼타임이지? 전략 숫자는 무조건 확정판이거든. 숫자 잘못되면 나중에 그게 다 감사로 돌아오는거야. 그리고 영업 숫자는 문제가 또 있어. 보기에 거슬려. 안 예쁘거든. 그러면 보고서 모양이 망가져."


이과장의 모니터는 보이지도 않을 옆자리 송차장이 옆에서 한 마디 거든다.


"으응, 그치 그치, 이과장, 잘 새겨 들어, 응? 저 형님이 기획 5년 전략 5년, 도합 10년이여. 암, 숫자, 모양 중요허지, 응? 중요허고말고. 첫 장 딱 보고 지저분하면 다음 장은 읽지도 않고 버려지는 거여."


이과장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갑자기 끼어든 불쾌한 송차장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숫자라고는 없는 본인의 모니터를 번갈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한다. 영업 시절부터 전략의 보고서 요식 행위에는 진절머리가 나있다. 기차장은 단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차장들간의 친분을 고려했을 때 대들어서 손해를 보는 건 다름아닌 나다. 이과장의 판단은 빨랐다.


"아,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고치겠습니다."

툭 두른 어깨를 가볍게 치고는 상체를 다시 한번 접었다 일으키는 기차장이다. 그렇게 기차장이 떠난 자리에는 당혹과 부끄러움과 약간의 분노로 바짝 얼어버린 이과장만이 멈춘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이과장은 기차장의 마지막 귓속말을 한참 되뇌고 있어야만 했다.


"사람 졸로 보지 마라."


2020년 1월 15일 수요일 맑음


<전략처 이과장> 씨가 뭐 어때서?

아니, 직장에서 씨가 뭐 어때서? 씨... 라고 안 하나 보통? 나만 그래? 사바사 아닌가? 아니 미리씨가 나이가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기껏해야 네다섯 살 아냐? 여섯살인가? 그럼 뭐 해. 지금 나보다 직급도 한참 아래고. 경력이 길어도 여기서 신입이면 신입답게 살아야지.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아니, 본인도 가만히 있는데 왜 주변에서 지*이야 지*이. 왼쪽 끄트머리에서 시간이 남아 도나. 여기까진 왜 쳐와?


<시설처 기차장> 영업 있을 때부터 알아봤지.

모지리가... 돌아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그 꼴을 당하고 다시 돌아오나? 별 새파란 놈한테 업신여김이나 당하고 있고. 이로운이는 애초에 틀려먹은 놈인데 하필 그게 그 위에 있단 말이지. 이번 개편 때 그놈을 날리거나. 강대리를 데려오거나... 아니면... 음, 이건 너무 리스키한가? 지금 강짱돌이도 마음이 편치는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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