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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Jan 23. 2023

제주에 오신 친정부모님

매일제주 334일차

결혼 11년차 설 당일에 처음으로 친정부모님과 함께 있었다.

코로나 이후 시댁의 차례가 없어지고, 제주에 온 이후로 작년 추석에도 시댁에 가지 않았다. 작년 추석은 남편도 본가에 가지 않았더랬다. 이번에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오고, 친정 부모님께서 제주도에 오셨다. 비행기표값때문에 망설이는 엄마를 동생이 설득했다.


설날 당일 점심에 도착하셨는데, 엄마는 전날부터 전화하셔서 점심은 떡국을 끓여놓으라고 하셨다. 마트에서 구입한 사골국물, 떡과 만두를 넣고 끓였다. 맛있다며 부모님께서 좋아하셨다.


친정부모님의 바리바리를 항상 부러워했는데 이번에 친정부모님께서 바리바리 싸들고 내가 사는 곳까지 오시니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눈물이 핑돌았다. 캐리어 두개를 온갖 반찬으로 꽉꽉 채워가지고 오셔서 보는 것만으로도 두 분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딸네집에 오는게 신세지는 거라고 생각하셔서 반찬이라도 해와야지.. 라는 말씀에 무슨말이냐며 서운한 듯 대답했다. 부모님이 싸오신 양념갈비, 오징어전, 장조림, 멸치, 진미채, 생저리, 김치를 먹으며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보답했다.


닭계장이 먹고 싶다는 입방정에 바로 친정부모님과 나는 저녁을 먹고 대형마트에 가서 재료를 구입했다. 아버지는 부엌에서 밤 늦게까지 닭계장을 끓이셨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뻐서 힘들어하시는게 방안에서도 숨소리로 느껴졌다. 잠을 자는 동안 새벽까지 닭계장 냄새가 온 집을 휘감았다. 아침에 먹은 닭게장은 환상적인 맛이었다. 닭계장을 마무리하시고 맛없게 된 것 같아 큰 일 났다고 곰솥에 잔뜩 끓인 닭계장을 어떻게 처리하지.. 라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나도 아이도, 엄마도, 동생도 정말 맛있다고 감탄하며 한그릇을 뚝딱했더니 아버지가 맛이 없게된 것 같아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며 연신 말씀하신다. 앞으로 오늘 이 순간이 계속 생각나겠지?


아침에 닭계장을 먹고, 도두봉 근처에 새로 생긴 할리스 커피숍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더니 좋아하셨다. 도두봉에 함께 오르자고 했는데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하시는 아버지가 과연 오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예전에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나만 먼저 걸어갔는데, 오늘은 동생과 내가 몇 발자국 가시면 멈춰서서 숨을 가쁘게 쉬시는 아버지에게 보조를 맞추었다. 천천히 올라간 정상에서 아버지는 너무 좋아하셨다.


집에 도착해서 점심을 준비하는데 낭낭이모, 이모부, 사촌동생과 이모의 시어머님이 우리집으로 오셨다. 남편이 만들어준 두 개의 책상, 이모가 만든 도기 그릇, 이웃을 초대하려고 구입해놓은 수저세트까지 모자란게 없이 11명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서인국 교수님의 '행복의 기원'에서는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걸 먹을때라고 했다. 오늘 점심 저녁을 함께한 친정 가족들이 모두 행복한 시간이 되었길...


덧,

부모님은 원래 화요일 새벽에 육지로 돌아가시기로 했는데, 화요일부터 비행기가 결항된다는 통보에 목요일 저녁으로 비행시간을 바꾸셨다. 그리고 무척이나 신나하셨다.

나는 새벽시간을 더 잘 활용해야겠다. (새벽시간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거실에서 찬송가를 크게 틀어놓아 방해가 된 건, 안비밀, 그리고 몇일만 더 참으면 되니 괜찮다, 예전같으면 짜증냈을텐데 나도 많이 자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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