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어떤 목사란 자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목사란 자는 신도들에게 수많은 민원을 들어 공황장애 약을 먹는다 했다. 하고 싶은 말도 목사란 틀 때문에 못 한다 말하면서 한 가지 사례를 들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급식시간에 다른 아이 때문에 다쳤단다. 다른 부모처럼 담임교사에게 전화해서 따지지도 못하고 참았단다.
본인이 받고 있는 민원은 힘들다면서 민원을 제기하지 못한 것에는 답답해함이 과연 목사의 자질이 있는지는 참 의심스럽다.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밀라는 게 내가 7년 다닌 교회였건만 점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바뀌는 트렌드인가 싶다.
목사란 자의 귀한 아이를 다치게 한 주체가 교사였던가! 따지고 막말을 퍼붓고 싶은 이가 가해자의 부모가 아닌 누군가의 귀한 자녀인 교사였던 것에 일말의 가책도 없었다.
그리고 남들이 다 그러는 것처럼 이란 말에 우리 사회가 학교 교사를 어찌 바라보는지에 대한 그의 인식이 드러났다. 학교나 교사는 항의성 민원을 마음껏 넣는 곳이라고 말이다.
교사는 아이를 가르쳐야 하고 보호해야 함은 맞다. 그러나 아이를 가르칠 방법도 보호할 방법도 없다. 가해 아이를 물리적으로 제지하면 교사는 가해자가 된다. 가르침이 정서적 아동학대란다. 누가 이런 웃기지도 않는 상황을 만들었을까? 학부모란 이름으로 갑질을 자행하는 당신들이다.
학교는 보육하는 곳이 아니지만 작금의 상황은 마치 개인 보모정도로 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에서 받아오는 성적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교사는 민원받이나 감정쓰레기통쯤으로 여기다니 참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안 할래요."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다. 막지 못한다. 아주 자녀를 지극 정성으로 사랑(?) 하시는 학부모 덕에 말이다. 한 아이가 이렇게 삐딱하게 나가면 다른 아이에게로 들불처럼 번진다. 교실 수업이 어떻게 흘러갈지 기성세대들의 학창 시절 경험으로는 아마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민원질로 속이 후련할지는 모르겠다. 그 개운함과 후련함은 민원 제기자만 느끼는 감정이다. 민원 받이가 된 교사는 어떨까?
그리고 그런 좋지 않은 감정을 안고 교사는 당신의 자녀와 마주하기 된다. 당신들이 이런 상황에 직면한 교사라면 아주 가르칠 맛이 날 것이라 생각되는지 궁금하다.
혹시 교사 교체를 대안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한번 바뀐 교실에 들어가는 교사는 대부분 퇴직한 기간제 교사이다. 장기간 하는 경우도 있으나 계속 바뀌기도 한다. 이게 무슨 걱정일까 싶다면 겪어보면 안다. 담임교사가 계속 교체되는 교실이 어떤 분위기 인지를 말이다.
작년보다 개선된 올해를 생각하며 준비했던 때가 있다.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을 하느냐!'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더라도 그건 틀린 것이니 나 아이 시험 문제를 맞은 것으로 해달라!'
'셈하고 읽고 쓰면 되지 프로젝트 수업같이 힘든 것은 하지 말아라!'
잘 가르치고자 하는 나를 막아선 이들은 신박(?)하게도 학부모들이었다.
내가 지금 격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손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책장 가득한 전공서적에 먼지만 쌓이는 까닭이다.
민원의 피해가 향하는 끝이 어디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