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남
같은 말을 주고받았음에도 온도차는 있다. 사람은 누구나 듣고 싶은 것은 크게 그와 반대는 적게 받아들인다.
이런 것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갭이 큰 경우가 있다. 하지 않은 말이 인풋 되어 있기도 하다. 대개 이런 경우는 지독하게 자존감이 낮거나 자의적 의미 부여가 심각한 수준인 과대망상에서 흔하게 보이는 일들이긴 하다.
머리로 알면서도 이런 부류를 직면하면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어긋남이 일상이고 관계에서 갈등이 빈번하다면 그건 스스로가 문제이던지 본인의 바운더리가 미쳐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대개의 경우 특정 개인의 문제가 많기는 하다. 당사자는 세상탓을 하지만 말이다.
어떤 연유에서 이런 개인의 왜곡된 성장이 초래되었는지 알 길은 없으나 그로 인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부류가 자각해서 변화하기를 기대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온 방식은 관성처럼 이어지기 마련이다.
유일한 보호책은 피하는 것인데 '난 이상한 사람'이란 표식이 없으니 직면하기 전까지 알아채지 못한다. 회피도 그다지 좋은 방책이 못된다.
요즘은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을 접하지 않으니 평온하다. 이 잔잔함 이어졌으면 싶으나 욕심임을 안다.
해서 근래에는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하지 않고 가급적 말수를 줄여가고 있다.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방어기제를 장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