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학부모, 교사가 마음이 맞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 태생부터 차이를 보이는 이 셋을 한마음으로 묶는 것은 각기 다른 세 방향으로 뛰는 토끼를 잡겠다는 황당한 소리와 바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향이 다른 이 셋을 뭉쳐야 한다며 무모한 것에 잔뜩 신경을 쓰게 만드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런 유토피아 같은 이상을 말로만 떠드는 자들은 단 한 번도 본인이 말한 것을 현실로 구현해 본 적도 없는 자들이다.
각기 다른 온도차를 인정해야 갈등의 폭을 줄일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기본적으로 같은 편에 서 있기는 하나 차이는 확연히 있다. 교사는 이들과는 가까워질 수 없는 철저한 남이다.
교육을 위해 의기투합한다지만 각자의 입장차가 또렷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포지션에서부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기를 바란다. 학생들은 지루한 학교 생활을 버텨내는 것을 항상 힘들어한다. 교사는 배우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내용을 전달해야 급여를 받는다. 이런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접점을 찾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학생수는 기본적으로 20명이 넘어간다. 50명 가까운 인원이 같은 꿈을 꾸는 일이 쉬울까?
학생은 교사나 학부모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 좀 편하고 즐겁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학부모는 자녀에게는 공부 열심히 & 교사에게는 자신의 자녀를 잘 봐달라 요구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잘 참여하기를 & 학부모에게는 교사의 뜻을 왜곡하지만 말아주기를 바란다.
이 서로 다른 몽상을 품은 셋의 온도차를 인정하지 아니하면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각기 바라는 바대로 움직이기를 바라는 대상이 자신의 뜻을 모두 수용하기 어려움을 인정해야 한다. 셋이 서로 다른 입장을 정말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지션이 주기적으로 서로 바뀌는 동화 같은 일이 벌어져야 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에 입장의 차이라도 인식하자는 것이다.
모두 내 마음 같지 않을 수밖에 없다. 나를 이해해 달라 다들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러는 자신들은 누군가의 입장을 단 한 번이라도 이해해 본 적이 있는지 먼저 묻고 싶다.
민원이 아예 없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건 내가 노력한다고 이루어질 일이 아니기에 그러하다. 올해 아직까지 버거운 민원이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싶다. 소소한 민원들은 그러려니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