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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Jan 18. 2024

옴짝달싹 못함

버티기


 사랑이 타인과의 교감이라 생각하나 사실 내 안의 넘치는 감정일 뿐이다. 절망 또한 외부의 환경이나 원인 제공자로부터 시작될 수는 있으나 정작 옴짝달싹 못하게 함은 내 안에 넓고 깊게 스며든 비관 때문이다.


 환경이나 타인은 쉽게 바뀔 대상들이 아니다. 나를 피폐하게 만든 것들과 대등하게 맞서기 위해서는 나를 단단하게 곧추세워야 한다. 말은 쉽지만 이것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더 치열해야하고 어쩌면 또다시 내가 무너지는 것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다.


 둥글둥글 살라함은 맞상대하기보다는 피하고 돌아가란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이 조금 더 수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자들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앞서 맞대응한 이들 덕에 대다수가 편안함을 누림에도 막상 부딪칠 때는 손을 맞잡고 함께하는 이들은 사실상 거의 없다. 힘들고도 외로운 길이다.


 무늬만 혈족인 삼촌이란 작자들로 두 번의 사기를 당하고 사업이 기울어 반지하 월세방으로 쫓겨났던 시절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아르바이트로 힘겹게 연명했다. 한겨울 자취방 기름보일러는 끌 수밖에 없었고 끼니를 거르는 것은 흔했다. 고속버스에서 이대로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삶이 아웃되어도 나쁘지는 않겠다 생각하면서도 버티고 버티긴 했다.

  좋아질 것 같은 믿음도 없었고 삶은 팍팍하기만 했다. 무엇을 한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어 삶이 나를 옥죄는 참담함 속에서 한참 잠겨있었다.


지나고 나니 절망이 그리고 비관이 잠시 옴짝달싹 못하게 할지언정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일어나 벗어나려 발버둥치지 않아도 된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족하다.

 절망과 비관은 언제든 갑작스레 안기기 마련이며 노력으로 떨쳐낼 수 있는 것 또한 아닌 듯싶다.

 뭘 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버텨보라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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