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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Apr 18. 2024

11화_홍수(수해水害)_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1998년 8월 6일, 그 참혹했던 수해.. 에클레시아의 회복

앵커: 의정부에는 44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서 시 전체가 물에 잠겼습니다.

중계차 연결합니다. 권순표기자, 이제 비가 그쳤습니까?
기자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리 이틀째로 쏟아붓던 폭우는 오늘 오전 11시쯤 그쳤습니다
그러나 저녁이 다가오면서 실비가 계속해서 내리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이 비가 어제와 같은 집중호우가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의정부시에서는 453mm의 폭우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출처 : MBC 뉴스, 1998-08-06),
권순표, "의정부에 비 440mm 이상 쏟아져 온통 물바다[권순표]" 「mbc뉴스」, 1998-08-06.


1998년 8월 6일 의정부 일대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하늘이 속수무책으로 뚫린 그날,

예상치 않은 폭우 앞에 당황한 의정부 전역은 온통 아수라장이었

사망, 실종, 막대한 침수피해, 2만 5천 명 이재민 발생..

이전에는 보지 못한 대규모 참사였다  

그 아비규환 현장 한가운데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던 고등학생의 내가 있었다

창문을 때려 부수는 듯한 세찬 빗소리에 놀라, 그만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보니 세상은 온통 물바다였다



8월 초순 한여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다

예년 같으면 이제 장마가 그 위세를 서서히 거두고 있을 무렵이었다

폭염이와 모두가 "더워 더워"를 연발해야 할 때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광경이 펼쳐졌다

비구름 전선은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 메가톤 급 빗물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단박에 쏟아 버렸다

그 양이 워낙 많아 며칠 걸려야 비구름이 물러갈 수 있던 상황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벗어나 버린 그야말로 대형 참사였다


당시 고등부 학생 회장이던 나는 의정부 교회 근처 부목사님 댁에서 저녁 회의를 하고 그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이미 중랑천으로 이어지는 의정부 천은 물이 가득 차 지대가 낮은 지역에는 지상으로 이미 물이 넘치기 일보 직전이었고, 교역자 사택 문 밖 역시 이와 다를 게 없었다. 어디가 어딘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물이 불어나 그냥 바다를 보는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자연의 횡포 앞에 국어 시간에 배운 칠흑 같은 공포라는 뜻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처음 본 광경이라 당황스러웠고 겁이 덜컥 났다. 노아 시대 홍수 심판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신이 번쩍 들었다

 

교회는 건축 후 몇 년 되지 않은 새 예배당을 갖고 있었다. 물론 매우 깨끗하고 정리 정돈이 잘되어 있는 상태였다. 모두가 그런 교회를 아끼고 잘 관리하며 지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교회 핵심 장소인 예배 본당이 지하 깊은 곳에 있었고 나선형 구조 계단을 타고 한참 내려가야 본당 문을 열 수 있는 구조였다. 지하 5~10미터 되는 깊이였을 테다.


수해로 그 안에 모든 음향 기기, 방송 장비, 강대상, 나무 십자가, 각종 기구 및 의자까지 모두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는 것을 의미했고 바꿔 말하면 나중에 다 버려야 한다는 뜻이 되었다  


교회는 비상이 걸렸다. 가까운 곳에 사는 성도들은 그 아수라장을 뚫고 교회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부목사님과 나를 포함한 소수의 인원들은 사택에서 교회까지 한참 떨어져 있는 그 거리를 헤치고 가기로 결정했다. 가슴 위, 목 밑까지 차오른 물을 조심스레 헤쳐가며 서로 손을 맞잡고 아슬아슬하게 물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눈앞에는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이 즐비했고, 듬성듬성 보이는 커다란 건물과 가로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취를 감춘 뒤였다.


수영을 할 줄 몰랐던 나는 굉장히 무서웠다. 자칫 잘못해서 도로 한가운데 파이거나, 길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면 순식간에 물속으로 잠기기 십상이었다. 길을 찾을 수 없어 멀리 서 있는 건물을 기준으로 보고, 방향을 가늠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가며 서로를 부축하고, 위태위태한 걸음을 끝까지 이어갔다.


어느 날 살면서 가장 위태롭고 무서웠던 순간을 만나면 그 순간은 그대로 저장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지금도 눈을 감고 그날을 생각하면 그때 이미지가 여전히 아른 거려 순간 등꼴이 오싹하는 경험을 한다. 천천히 한 걸음씩 걷다 보니 교회 도착에 1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한발 한발 조심히 때지 않으면 그 누구도 큰 사고를 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걷는 데 집중했고 다행히 무사히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며칠이 지나면서 시내를 가득 메웠던 물은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의정부 여기저기 온갖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이 가득했고 우리 교회는 모든 물건을 버리고 다시 장만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재사용이 가능한 물건들은 빨고, 말리고, 고쳐서 다 다시 썼다. 그렇게 남은 방학을 모두 반납하고, 거의 매일 교회로 향해 청소를 했던 기억이 난다. 교회를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몇 주 만에 상당 부분이 복원 가능해졌다.



그 일을 통해 홍수 피해 당사자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매년 이맘때면 들려오는 홍수 피해 소식에 별 관심이 없었다. 으레 매년 있는 일이지, 듣는 순간은 딱하지만 그게 내 일이 아니라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언제 지나쳐 버린지도 모른 사이에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 일이 실제로 나와 관련이 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홍수 피해는 막대했고, 수많은 사람을 고통 속으로 처박아 버렸다. 상실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가르쳐 주었다. 마을이 아니라 시 단위가 잠겼던 대형 재해였기 때문에 당시 전국 뉴스를 통해 생중계로 실시간 상황이 송출되기도 했다.


이 경험은 다른 종류의 고통(고난, 아픔, 슬픔)에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넘어서 사회를 바라보고, 세상에 수많은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게 만들었다. 고통의 의미란 무엇인지 알고 싶게 만드는 또 다른 계기가 되어 주었다.


지대가 낮은 곳 반지하나 지하에 사는 사람, 집이 없어 임시 가건물에 사는 사람, 주로 그런 분들이 홍수로 더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수해였다는 사실을 실제로 알게 되면서 보다 어려운 이웃들,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에게 더욱 마음이 향하게 되었다. 동병상련을 느껴 더욱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매우 소중하고도 분명한 나만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너무 치우쳐 보이는 삶처럼 비칠지도 모르지만 그게 나에게 주어진 삶이었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이후 홍대입구 노숙자 분들에게까지 다가가게 된다.


다니던 교회는 수천만 원 이상 큰 피해를 입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개인 시간과 재산을 나눠 교회를 복구하고, 재정돈 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가진 몸으로 헌신했다.


수험생 기간을 곧 앞두고 있었지만 내 일 보다 수해가 더 큰 일이라 여겼고, 그렇게 다른 어른들 틈에 섞여 날마다 청소를 하거나 물건을 옮기는 등, 수해 복구공사 현장에서 여름 방학을 다 보냈다. 공부 이상의 배움을 많이 얻었던 시간이었다.


교회(에클레시아)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게 되는 첫 시작이었다. 지하 예배당 바닥 타일은 거의 모두 떨어져 나가 버렸고, 실내는 곰팡이 냄새로 진동했다. 거의 모든 공사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안에서 키우던 식물도 다 죽거나 떠내려 갔고, 수많은 장비는 고물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 자기가 가진 모든 재산을 잃거나, 가족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버릴 때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절망한다. 사랑하는 만큼 절망하고 사랑해서 낙담한 만큼 오래 일어나지 못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프고, 사랑하는 만큼 아픈 법이다. 그런 그에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이제 고통을 털고 일어날 때도 되지 않았냐 하는 말은 그 사랑의 깊이를 아직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파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오늘 이 시간 사랑해서 아파하고 있는 우리 이웃을 향해 고개를 돌려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 한다. 언젠간 그 상황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말이다.  


여름방학을 고스란히 반납하고 수해 복구를 하고 나니 비로소 교회는 내게 어떤 의미이며 교회란 애초에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교회를 다니는데, 교회라는 정의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회란 종교 건축물을 뜻하는 것일까? 흔히들 말하는 예배당을 교회라 부르지만 사실 교회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모든 시대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된 신자들의 모임을 말한다. 교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교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를 용서받아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교회 건물이 홍수로 망가지고, 황폐화되어도 아픈 마음으로 모여 그 무너진 교회 예배당을 재건하는데 힘쓰는데 하물며 우리 주위에 무너지고 절망하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다가가 한 명의 교회가 되고 있는가 자문하게 되었다. 복되고 아름다운 소식을 삶으로 전하고 있지 않다면 본분을 잊어버린 것이요. 맛을 잃은 소금과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이 경험은 내게 새로운 차원으로 교회를 바라보게 해 주었고, 그 이후 고3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커다란 동력이 되어 주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태복음 16:18)




기쁨아 아빠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런 일을 만났어. 삶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야.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고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어느 날 내 앞에 다가오거든. 때로는 그게 내 마음에 무척 드는 좋은 일일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정반대의 아픔을 가져다줄 때도 있어


아빠는 네게 아빠처럼 살라고 말하는 게 아니야. 아빠가 겪은 경험을 네가 겪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그 경험은 매우 다르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들어올 거야. 아빠가 네게 말하고 싶은 건 그 어떤 경험이 네게 와도, 네가 그 문제를 대하는 방식과 태도가 그 이후를 새롭게 결정한다는 거야.


아빠는 수해를 통해서 참혹한 자연재해란 무엇인지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어.

수영을 하나도 못했지만, 그 물길을 헤쳐 가야 했고,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두고 수해 복구에 꽤 오랜 시간을 썼어. 공부를 해야 할 때였지만, 나 몰라라 그렇게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어. 그리고 이후에 그 결정을 잘 내렸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어


아빠는 전전긍긍하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거야.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살아 계신다 믿었던 그 하나님께 내 삶을 꾸준히 의탁해 왔어. 열다섯 살에 그분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쭉 그렇게 살아오려 노력하면서 수많은 신기한 경험들을 했다고 했잖아. 수해(水害)를 통해서 다른 이웃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을 고루 만나며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어


아빠가 생각하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는 바로 '사귐'이라는 단어야.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먼저 사랑하고 관심을 주고받고 하면서 그 사람을 깊게 이해하고 나면, 다른 사람을 사귀는 게 훨씬 용이해져. 사람은 다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같거든. 사람은 사랑받길 원하고, 사랑을 주고 싶어 하기도 해. 아빠는 네가 그 사귐의 능력을 모든 경험을 통해 배양하길 바라. 억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경험에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 곧 배워진단다.


기쁨아, 아빠는 감사해. 우리 기쁨 이에게 이렇게 하나하나 있었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 주면서 이제까지 있었던 온갖 종류의 감사 제목을 공유할 수 있어서.


그러니까 기쁨아~


지금 느려도 괜찮아, 서툴러도 괜찮아, 많이 어려워도 괜찮아.

결국 다 잘 될 거야. 하나님이 너의 피난처가 되시고 너를 푸른 풀밭, 시냇가로 인도하실 테니까


우리 기쁨이 아빠가 아주 많이 사랑한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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