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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Jun 02. 2024

23화_먼 나라이웃나라_중국 편_세계시민_1

너희가 권능을받고 예루살렘,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내 증인 되리라

중화 인민 공화국 (중국)
* 수도: 베이징
* 최대 규모 도시: 상하이
* 대도시 : 광저우, 난징, 시안, 푸저우, 칭다오, 충칭시, 홍콩 등
* 인구 : 14.1억 (2023)
* 종교 : 1982년 중국 공산주의 종교법에 의거하면 중국 정부는 인민들과의 협조를 위한 수준에서 공산당 종교 활동을 인정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본질적인 기독교 복음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실정으로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코로나를 전후하여 수많은 선교사들이 중국으로부터 본국 귀환을 통지받아 많은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 2021년 중국 기독교 신자 수는 전체 인구의 1% 대로 집계되었다
* 시진핑 집권 이후 어린이를 위한 종교 교육과 활동은 금지되고 있다
* 가정 교회와 지하 교회 교인들을 합산하며 기독교 인구는 1% 보다는 다소 큰 2% 선,
즉, 1400~2800만 명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추산과 달리 이 보다 월등하게 많을꺼란 관측도 있는 게 사실이다


아빠 기쁨이는 장애인이라서
이거 못해요  
그렇지 않단다 기쁨아
 
장애인이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네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거란다

너는 해낼 수 있어
아빠가 늘 말해왔지
너는 할 수 있다고!

지금까지 모두가 못한다고 했던 걸
네 페이스에 맞추어 하나씩 하나씩 이뤄왔거든
사랑하는 기쁨아 자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넌, 일어나 앉는 것도 서는 것도 앞으로 한 걸음을 떼는 것도 못할 확률이 높다 했어
그러나 넌 그 모든 힘겨운 치료를 종일 받아 가면서,
기고 앉는 방법, 몸을 곧추 세우고 서는 법을 차근차근 배워나갔지  
어느 날 장딴지에 힘이 실리고
일어나 걷더니, 앞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기 시작했어
다시 어느 날엔 뛰어다니기 시작했지
물론 걷고 뛸 때 통증이 여전히 있지만
지금은 네가 흥분할 때면 아빠는 늘 뒤에서 조심해! 하면서
너를 잡으러 다니잖아~ 거봐!
그것뿐이야?
 병원에서 처음에 기쁨이는 말 잘하기 힘들 거라 했어  
그러나 놀라우신 하나님 사랑과 은혜로 기쁨 이는
논리적이고 감성적인, 이성과 감정이 고루 발달한 10살 형아가 되었지
Why? Why? Why? Why? Why?
문제 해결 방법론 중에 5 Whys라는 게 있어
회사에 다니는 분들이 잘 아시는 내용이야

너는 날마다 그 파이브 와이(5 whys) 묻는 사람이 되어 있어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가 될 때까지 물어보지

때로는 혼나는 상황 속에서도
이해가 아직 안 되었기 때문에 5 whys를 묻는 너를 보다가 순간 웃기는데
네 앞에서 웃을 수 없어서 뒤돌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은 적도 있어
그때도 주님께 감사해요 하고 기도드렸단다
감사한 일이니까
의사 선생님께서 통계적으로 이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네게도 따라올 거라 말씀했던 그 모든 과정을
하나씩 하나씩 돌파해 나가고 있는 너를 보면서,
 지난 10년 그 힘겨운 상황을 극복한 기쁨이를 아빠는 대견하게 생각해
너는 전혀 부족하지 않아
자, 결론적으로 그래서 장애인이라서 못한다고 하는
네 말을 이렇게 바꿔 주어야겠어
아빠, 장애가 있지만 나 기쁨이는 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니 이제까지 극복해 오면서 느리지만 해냈고,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앞으로도 극복해 가는 건 뭐 시간문제죠!  
기쁨인 농담도 잘하고, 유머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단다
사람을 매우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
포텐(potential)이 터질 아이 같다고 누가 그러더라
처음 보는 사람과 상황 앞에 많이 부끄럽고 쑥스러움 타지만
그만큼 사람을 향한 호기심과 애정이 많기에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한 걸 알고 있어 충분히 시간을 가져 어느 날부터 책상 아래로 숨지 않게 될 거야  
엄마는 네가 국어 잘할 수 있도록 매일 밤 학교, 재활치료, 어느 날은 화상치료마저 마치고 피곤한 상태에서도 기쁨이 너를 위해 책을 읽어주었고
아빠는 기쁨이가 영어 너무 어렵다고 하니까 너를 데리고
수많은 외국인 아저씨, 이모들을 계속 만나게 해주고 있지
이제까지 아빠와 한국에서 만난 외국인 삼촌, 이모들을 한 번 나열해 볼까? 봐봐 생각보다 무지 많아
이집트, 프랑스, 인도, 미국, 에스토니아, 콜롬비아, 독일 삼촌, 이모들은 직접 만나게 해 주었고
에콰도르 이모는 영상통화를 통해 소개해주었지

이젠 네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할 거 같아~

아빠!
왠지 나는 영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아빠가 계속 도와줄 거니까
될 때까지 옆에서 가르쳐 줄 거니까  
그래, 네가 말한 그대로야
그렇게 고백할 수 있도록 아빠가 너를 섬길 거야
오늘은 먼 나라 이웃나라 중국 편이야
제1 편이지
우리나라 밖으로 첫 번째 항해를 떠나자
우리 집에 커다란 지구본 보며
언제나 네가 첫 번째로 물어오는 질문이 있지
아빠, 이집트 가려면 비행기로 몇 시간 걸려요?
나 여기 아빠랑 엄마랑 가고 싶은데, 내일 갈래요?
응 기쁨아 잠시만, 이집트는 비행기로 20시간가량 걸린다고 나와 있네
그러면 비행기 안에서 밥 몇 번 줘요?
음~ 정확하진 않지만 6시간 기준으로 3끼 줄 거 같은데 거의 하루를 비행기 안에 있어야 하니까
아! 중간에 다른 나라를 경유한다면 각 비행기에서 한 번씩 총 두 번 줄 수도 있어
응 알겠어,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빠  
기쁨이 너에겐 밥이 가장 중요하지, 아빠가 그 마음 잘 알지..




기쁨아, 아빠가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예수님께 받은 그 사랑이 내 안에 넘쳐흘러 너를 언제나 사랑하게 만들어 주신단다
이 모든 시간이 있기까지 하나님 아버지는 너를 위해
아빠에게 수많은 경험을 하게 하신 것 같아.
30화로 그 모두를 다 말해 줄 순 없을 것 같지만
최선 다해볼게 가능한 한 소상히 말해줄게
세상에는 수많은 장애를 가진 훌륭한 인격과 실력을 가진 어른들이 많으셔
단지 우리가 그분들을 아직 모를 뿐이야
우리 기쁨이가 아름다운 성품과 실력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서 수많은 친구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눠주면 좋겠어

나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 지구를 위해 배우는 거야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모든 나라, 모든 족속을 품기 위해
배워 가는 거야

그러니까 장애인이라는 작은 테두리 안에 널 가두지 마
예전에 말했지,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 어느 환경에서는 모두 장애에 봉착해
그러니, 장애인이라도 존재 자체로 세상에 던지는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어
 
무엇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 것 살아가는 것 자체가 능력이야



오늘은 중국에 대해 네게 들려줄 거야

 너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의 가슴속에 따뜻함이 스며들었으면 좋겠어
오늘 서두가 길었다~

이제 시작한다. 가까운 나라로 가니까 부담 하나도 갖지 않아도 돼  


슬픔과 기쁨의 나날들

2000년 대학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1년 가까이 수술 및 재활을 이어나가야 했다. 13살에는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14살엔 내가 왕따를 당했다.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며 10년 넘게 낯선 아빠가 되어 가고 있었고 우리 집은 늘 가난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신앙(信仰)에 눈을 떴다. 15살 어느 날 오후, 통곡하며 울던 어느 기도 시간 가운데 예수를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갑작스럽게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작은 집에 몇 년 함께 모시고 살면서 많은 정이 쌓인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천국으로 가시면서 나는 1주일 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은 늘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 허덕이며 살았다. 어느 날은 도시락을 싸지 못한 채 학교를 가 버린 바람에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집에 갈 수도 없고 해서 널따란 운동장 귀퉁이에 있던 수돗가에 입을 대고 콸콸 나오는 수도꼭지 물로 대충 한 끼를 때운 날도 있었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입학 식 무렵 자녀를 위해 십 년 넘게 모아 둔 적금을 깨어 그걸 헌금으로 드리겠단 어머니 말씀을 듣고, 그 마음을 알기에 함께 아멘 했고 고등학교 입학식에 찾아가 세 벌 교복을 얻어 3년을 입고 다녔다. 입학 후엔 국가로부터 일정액 학비 보조를 받으며 다녔다.



꼬인 실타래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한 번에 풀리지 않을 수밖에 없는, 어딘 가 심각하게 비비 꼬인 실타래

언뜻 봐도 사용하기 불편한.. 그냥 버리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는 쓸모없는 실타래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고 2 때는 교회 근처 보이는 모든 아파트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다녔다 예수를 전하려고. 고3 때는 학교 재단 내 옆에 붙어 있던 초등학생 전도 하느라 열을 내었고, 대학에 들어가선 홍대, 대학로 등지에서 노숙자 전도에 열을 올렸다. 당시에는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파는 아저씨들, 아주머님들이 많으셨다. 나도 그 틈 사이에서 차량 전도를 하다가 시대가 바뀌면서 실내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지하철 바깥 의자 위에 앉아 계신 분들께 전도하는 걸로 대신했다. 큰 기쁨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한국대학생선교회(Campus Crusade for Christ)에 소속되어 더 깊은 차원으로 배웠다.  



어느 날은 미아리 점집 일대를 돌며 점집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다 점집에서 나온 아주머니께 재수 없게 여기서 예수 전해하며 소금을 한 차례 세게 맞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점치던 할아버지가 내가 전한 사영리를 듣고, 점을 그만두고 이제 예수 믿겠다고 한 실화도 있었다. 3학년 때 교우 관계는 좋았지만 예수에 미쳐 광신도라는 별명도 갖게 되었다. 군대에서도 선임 몇이 광신도라 그랬다. 대학생선교회 시절은 전국 방방 곡곡을 돌며 순례 전도를 다녔다. 농사일을 돕거나, 독거노인 어르신들을 섬기는 사역에 참여했다.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 나는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수많은 첫 사람을 만났다.


첫 사랑이 아닌 첫 사람,


영혼과 영혼을 대면하는 만남을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한 내게 주님은 귀한 사람을 무수히 붙여 주시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니 좋은 사람들을 평생에 걸쳐 참 많이 만났다. 나를 귀하게 여겨주는 수많은 어른들을 만났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기쁜 소식, 한 마디로 복음(Good News) 전함을 통해 성격, 가치관, 성품이 크게 변했다.




기쁨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책상 아래로 숨는다,

책상이 안 보이면 문 뒤로 숨고, 문이 없으면 멀찍이 몇 미터 떨어져 오지 않고 관망하고 서 있는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언제까지일까 속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나 자신이 초등학생 때 기쁨이와 꼭 같았다 한다.


작은 어머니께서 처음 인사 차 형님 집(우리 집)에 오신 그날 기쁨이 아빠도 그랬다. 작은 어머니께선 인자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기쁨이만 그런 게 아냐. 너도 그때 그랬었어 너도 나 보고 부끄러워 숨었잖아 기억이 안 나는구나. 네 저는 기억이 안 나요~~
 


스무 살 되기 전 이미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다. 쓰리고 아프던 시절, 붕대로도 연고로도 수술로도 치료가 안될 것 같던 때였다. 돌아가는 그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던 시절, 다니던 교회는 어느 날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수해를 입고 나는 최선을 다해 공부했지만 대학도 예비 순번으로 겨우 합격했다. 인생을 주님께 일정 부분 헌신했다고 그때 생각했지만, 잘못된 판단, 오해일 뿐이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순종은 기꺼이 드리는 순종이지, 나의 순종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어야 한다는 것은 순종이 아니라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기도하던 오랜 제목이 있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 Acts 1:8)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도행전 28:31)

Boldly and without hindrance he preached the kingdom of God and taught about the Lord Jesus Christ (Acts 28:31)



성경에서 말하고 있었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라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다고



나는 그 본문을 해석하면서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다른 언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결심했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기 위해서 나는 세계 시민이라는 두 어절의 단어로 내 비전을 응축했다.



나는 세계 시민이 되어 온 세계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해야겠구나. 거기엔 선교사가 되는 방법 혹은 직장에 들어가 내 일을 하면서 직장 선교사, 사회 선교사로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 보였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지금까지 그 선택에 후회 없이 기쁘게 살아가고 있다


중국 내몽고 평원에서, 20년 후에 쓸 브런치를 예상해 둔 듯, 하트를 보냈네요~ 여러분께 드립니다 제 마음을!


2001~2015년 사이 중국을 4번 방문했다. 2-3주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고, 그곳에서 현지 친구를 사귀며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010년대 초에는 신입사원 연수로 회사 공장이 있는 중국 방문 견학 차 중국을 한 번 더 방문했다. 어느 해는 인천-천진항을 통해 크루선을 타고 배로 간 적도 있었다. 중국에 뿌리를 내려 평생 살고 싶은 강렬한 의지가 있었다.



몇 년 안에 중국어를 습득하고 기쁨이와 함께 광활한 대지가 있는 중국 여행 다닐 날을 지금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정 안되면 AI 도움을 통해서라도 가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그날들을 기다리고 있다.


     

게르 앞에서 엎드려 뻗쳐 하는 내 어린 모습, 사실 벌 받을 행동 하기 전에 미리 취한 액션이지만 결과적으로 심한 벌을 받았다 ^^

중국에 내몽고라는 지방이 있다. 북경에서 내몽고 자치구까지 차량으로 5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그 당시는 한참 더 오래 걸려 내몽고에 도착했다. TV에서 몽고라는 나라를 자주 들었지만, 중국에도 비슷하게 생긴 내몽고 지역이 있다는 사실을 실제 가기 전까지 몰랐다. 방문하던 날, 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따뜻해서 봄 날씨 같았다.



생애 처음, 말 위에 올라갈 기회를 갖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사극을 좋아했던 내게 있어, 야생마를 탄다는 건 그 자체로 큰 의미였다.

그야 말고 절대 놓칠 수 없는 찬스 그 자체, 앗싸가 연거푸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 앞에 놓여 있었다. 아직 군대 가기 전 철이 조금 덜 든 나였다.


앗싸!

내 평생 언제 야생마 탈 수 있겠는가? 평원을 달리며 배가 고플 때 멈춰서 풀을 뜯겠다는 고집 센 야생마

그 야생마는 천리마와 다름없었다. 이 기회를 어떻게 잘 살려낼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런 고민을 하며 일정 시간 교육을 받고 적토마 위에 올라탔다.


이 말 왜 이렇게 키카 커? 무섭게시리
나 혼자 쓸데없는 말(words)을 그 말(horse) 듣게끔 했던 게 후회가 된다
아마도 그는 내 말을 알았들었던 게 아니었을까..
자나깨나 말(Words and Horse)조심!


서부 영화도 아니었지만 줄지어 서 있던 수십 마리 말 중에 힘 좋아 보이는 녀석으로 한 마리 골랐다. 백마도 있었는데 실제로는 갈색마, 나는 그를 적토마라 부른다. 적토마 한 마리를 골랐다.


키야~ 드디어 내가 황야를 달리는구나.


으쌰으쌰 ~ 진짜 기분 최고다!



일단 사방팔방 길에 경계가 없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자유 말 그대로 자유 분방한 평원이 마음에 들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던 황야, 평원을 달릴 채비를 마쳤다. 이십 명 남짓 한 인원들과 말 곁에 서 있는 원주민들은 말 타는 법을 교육하고 듣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맨 먼저 교육을 끝내고 기다리던 나는 허공을 한 번 바라 보고,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제주도 한 번 가 본 적 없던 나에게, 조랑말 한 번 구경 못해본 내가 이제 중국에 와서 말을 타는구나


삼국지 조자룡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속으로 촌놈 출세했다 생각했다


당시, 출발은 5~10분가량 후에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엇에 홀렸는지, 나는 그만 하지 말아야 할 액션을 취해 버렸다. 서부 영화 한 장면에서 봤던, 아니 최수종 씨가 끝없이 나오던 그 어느 사극 한 장면에서 봤던, 그 모습을 기억해 버린 것이었다. 정말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그 일이 일어났다.


고삐를 쥔 채, 잡아야 하는 끈을 잡고선, 내 오른 다리를 힘껏 들어, 말의 오른쪽 배 부분을 세게 차버렸다.

순간 알았다.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이제 벌어질 거라는 걸..


순식간에 말이 흥분했다.

너무나 세게 맞았기 때문에 그 아이도 알았던 것 같다


오늘 만난 이 사람은 승마 베테랑이라고 어서 달리라는 신호를 보낸거라고

그 역시 오판 한 것 같았다 주여~


말은 히이잉~~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뭐 방향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앞으로 내달렸다.


말의 평균 시속은 70km 정도 되는데, 내 느낌에는 엄청나게 흥분한 말이 그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내 달렸던 것 같다. 심정적으로는 시속 100km에 육박했다. 스릴 정도가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온몸과 마음을 채워 나갔다. 그로부터 40분 간 나는 내몽고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을 향해 내 달리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 보다 더 극적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끝까지 떨어지지 않고, 필사적으로 끈을 잡고 몸을 말에 밀착하려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이었고, 불행이라고 한다면 말의 리듬과 나의 리듬이 정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말이 두 발을 공중에 띄울 때 나도 엉덩이를 들었어야 했는데, 몸은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정확히 그 반대로 절구를 찧듯, 방아를 찧듯, 40분 내내 나는 흥분한 적토마 위에서 수천번 방아를 찧고 또 찧었다. 


그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주님 저 여기서 떨어지면 죽어 생각보다 빠르게 당신 앞에 가거나, 크게 다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주님 제가 경솔했습니다. 엉덩이 세게 찬 거 후회합니다. 아니 회개합니다. 이 번 만 살려 주시면 저 더욱 열심히 주님 따르겠습니다. 지금 엉덩이가 너무 아픕니다. 저 좀 살려 주세요. 적토마는 언제 멈추나요 주님 이 말을 멈추게 해 주세요


이렇게까지 기도할 정신이 없었다


아니 못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주님 제가 잘 할께요


이 몇 마디만을 연거푸 하는 것으로 혼미한 내 정신을 붙잡았다.


한참을 달리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봤다. 내 뒤에는 적어도 5-6마리의 말과 그 말 탄 원주민들이 약 1km 가까이 거리를 두고 그 거리를 좁히려고 안간힘을 쓰고 쫓아오고 있었다. 뭔가 시끄러운 게 나를 향해 욕을 하며 달려 오는 것 같았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40분 만에 드디어 기도 응답을 받았다. 한참을 내달리던 적토마는 풀이 많은 곳을 찾더니 갑자기 속도를 줄여 나갔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곳을 찾아갔을까? 그 아이는 분명 그 지역을 꿰뚫고 있던 게 분명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멈추더니 고개를 땅에 박고 풀을 뜯어먹는다. 그제야 이미 내 엉덩이는 많이 찢어진 상태, 온갖 피멍이 다 든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뒤이어 도착한 내몽고 거친 남자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로 온갖 욕설을 내게 퍼부었다. 드릴 말씀이 없었고, 뭐라 이해할 수도, 대답할 수 없는 중국말을 들으며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다시 한 시간을 넘도록 속도를 낮춰 게르까지 돌아오며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걸 보게 되었다.


장관이었다. 하늘에 별이 쏟아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수천 수만개의 별들이..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만큼 뒷부분에 커다란 상해를 입었다. 며칠 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가며 참회의 밤을 보냈다. 같이 간 일행에게 너무 많이 미안했고, 사실 그들이 내가 떠난 후 어떻게 그다음 일정을 소화해 냈는지 지금까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어리석음의 결과로 참혹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도 쌌다 20년이 지났지만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고생하신 현지 주민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다치기 전의 모습, 한 없이 평화로워 하던 나의 모습, 그 다음 날 그런 일이 있을 줄 전혀 모르던 기쁨이 아빠





중국에 처음 갔을 때 일이다. 나는 대학교 외국인 기숙사에 머물면서, 친구를 사귈 요량으로 한껏 마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동성 친구를 사귀어야 기숙사도 놀러 가고 밥도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주로 중국인 남학생들을 컨택해 대화를 나누었다. 중국과 한국의 문화, 종교, 사회, 교육 등 주제로 열띤 대화를 참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처럼 북경 어느 대학 기숙사 식당에서 줄을 서 있었다. 밥과 함께 반찬을 받아 옆으로 이동하는 코스였고, 다음 반찬이 있는 곳으로 이동 중이었다.



뿔싸!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식판 모서리로 옆에 서 있던 어떤 여성의 손가락 마디를 쳤다. 그녀는 매우 아파했고, 나는 어제 배운 중국어를 기억하며 뚜이부치 뚜이부치(미안해요)를 연거푸 반복했다. 마음이 상했는지 아무 말 없이 식당 어느 자리를 찾더니 조용히 앉는 그녀를 쫓아가 나는 사과를 하고 싶어, 그 옆 자리에 잠시 앉아도 되는지 정중하게 질문했다. 통증이 가셨는지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래도 되겠다 허락했고, 나는 아까 상황을 영어로 설명하면서 정말 본의 아니게 미안했고, 아프게 해서 죄송하다 거듭 말했다.



그녀는 나를 호기심 어린 투로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는 누구며, 어느 나라에서 왔고, 무엇 때문에 여기 왔냐 물었다. 그렇게 한참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가 나보다 누나라는 사실과 중국에서 내놓으라 하는 수재(秀才)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토플 문제를 만점 맞았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동시에 그녀는 정말 친절했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친해진 우리는 그로부터 3년 넘는 동안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바로 그 다음에도 그녀를 만나러 중국에 갔지만, 명절이어서 고향에 가 있어 만나지 못하고 통화만 어렵게 했다. 군대에서 너무나 고달픈 시절을 보내다가 답장을 할 수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동시에 그녀도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결국 연락이 끊기게 된 걸 지금도 안타까워할 정도로, 그 중국인 누나와 나는 정말 가깝게 지냈다.



우리는 의남매를 맺었다. 도원결의는 아니었지만, 서로를 향한 신뢰를 바탕으로 의남매가 되었다.



나는 그 누나에게 사영리(기독교 복음 책자)를 주었다. 그녀는 내 앞에서 똑똑한 발성으로 중국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스스로 영접하고는 그곳에 있던 한국 여선배를 통해 그 이후 몇 년간 성경 공부를 받았다.



기적이었다. 그녀는 종교를 받아들이기 힘든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수재였고,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지원을 받는 학생이었다. 처음 만나고, 그다음 해에 다시 만나러 또 중국에 갈 만큼 의남매 누나에게 대한 마음이 컸다. 이미 20년이 흘렀지만 이 누나도 종종 나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많은 대화를 주고받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 몇 년 후 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원이 되었을 때 내게 보내준 이 사진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내 기억엔 이 폭포가 남미에 있는 이구아수 폭포라고 했던 것 같다.



중국 의남매 누나를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세상 어디에나 모두 있다고,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신자답게 살면서, 그리스도를 말로, 행함으로, 진실함으로 전하는 것임을 깊게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중국을 떠올리면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식판 들고 있던 내가 누나 손가락을 실수로 치고 미안해하던 그 장면이다. 전혀 예상치 않던 순간에 하나님은 또 한 번 일하고 계셨다. 주고받던 거의 마지막 메일에 중국 누이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현재야. 나 이제 예수님 믿는 거 걱정하지 마, 네가 연결해 준 그 언니와 교제하면서 나는 성경을 몇 년간 배웠고, 이제는 누가 뭐래도 예수님을 믿고 따라 살아갈 거야. 그러니까 누나 걱정 많이 하지 마. 우리 동생 보고 싶다.
잘 지내다가 꼭 다시 만나자  


이구아수 폭포 앞에서 출장 중에 찍은 사진을 내게 보내준 의남매 중국인 누나


그게 마지막 이메일이 될 줄 몰랐다. 아마 주님은 내게 거기까지만 그 누나와 연결을 허락하신 줄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 천국에 가면 영원토록 함께 대화 나누겠지. 나는 지금도 그런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그녀를 기억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한 나라, 하나님 나라 속으로 들어가, 내가 만나고, 의남매를 맺은 그 누이를 그리워한다.

 


황태자들이 앉았을 그 곳에 앉아 보았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외쳤을 수천년 역사 위에 앉았을 왕들을 추억하며


금빛 왕좌에 앉아 있지만, 수천 년 역사를 흘러 내려오면서 저 자리에 앉아 있던 수많은 왕들은 자주 불안 속에 살았을 것이다. 내 왕위를 찬탈하려는 모의가 있지 않을까? 내 자리를 영원토록 지킬 수 있을까? 죽고 싶지 않은데 불로초를 어디서 구하지? 이런저런 많은 고민 속에서 수많은 왕들은 그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지 못해 결국 다른 방향으로 그 답답함을 풀었을 것이다. 술과 여자, 재물로, 때론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뭇 백성들에게 고스란한 피해를 입히고 힘없는 백성들은 그 피해를 다 떠안아야 했을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나 왕좌가 있다.



그 마음에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내 삶은 달라진다. 그 왕좌에 누가 주인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누구도 강요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 있어 내 왕좌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어 드림으로써, 깊고 오래 지속되고 있는 평화를 얻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무수한 지혜와 지식을 통해 내 삶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변화를 겪어왔다. 분명 아내와 아이가 있어 오래오래 그들 곁에 살아야 하지만, 설사 지금 천국에 간다 하더라도 여한 없을 만큼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고백하고 싶다. 이 글을 쓰기 이틀 전에도 예수님을 모르는 어떤 분의 손을 잡고 책 한 권과 내 마음 담은 편지를 같이 드리며 속으로 짤막한 기도를 드렸다.



마음과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어지는 삶,

그래서 결국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꿈꾼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의 말(Words), 행동(Action), 삶(Life)에 따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존중받고, 격려받고, 사랑받고 다시 나누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 사실을 모두가 기억하길 간절히 바란다. 




기쁨아 아빠가 네게 주고 싶은 마지막 말은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나와 있어

네게 그 말씀을 선물로 주고 싶어.


그리고 아빠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좋은 소식 듣고, 어느 때에라도 주님께 나아오길 바라.


제대로만 믿는다면 예수님을 믿는 기쁨은 그 어떤 기쁨보다 크고 영속적이라는 사실을 기쁨 이도, 세상에 모든 사람들도 알게 되길 바라. 진심이야.


우리 기쁨이 많이 많이 사랑해~


너는 말씀(Good news)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 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주님 기쁨이가 길바닥에 눕는 건 분명 아빠를 닮은 게 맞는 것 같습니다


P.S 다음 화_ 아프리카 편도 꼭 읽어 주세요~

하루 차이로 발행을 해서, 중국편을 못 보시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늘 제 글에 찾아와 주셔서 라이킷 눌러주시고 답글에 응원까지 남겨 주시는 모든 분들께 이렇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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