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어 다니기 시작한 나는 좁은 단칸방이지만 마음먹은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기쁨에 온 방을 누볐다. 여기저기 기어가 장난감을 빨아보고, 방안에 널브러진 걸레인지 수건인지 모르는 것을 잡아당겨팔에 걸고,머리에도 뒤집어쓰면서 혼자 신나게 놀았다.
엄마는 집에 찾아온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검정 비닐봉지를받아 방 모퉁이에 두었다. 그러고는 또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게 뭐지?
그때부터 내 눈엔 검정 비닐 봉지만 보였다. 손에 들고 있던 모든 것을 놓고 검정 비닐봉지를 향해 기어서 돌진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나는 열심히 기어가 봉지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냈다. 처음 보는 물체였지만, 겁도없이 자연스럽게 입 속에 넣었다. 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방을 기어 다니며 빨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것이 고소하니 맛있다.
하나, 둘 계속 입에 넣었다. 엄마는 여전히 수다에 정신이 팔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관심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저녁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낮에 먹은 게 엄마 젖을 잊을 만큼 든든했다. 평상시와 달리 엄마 젖을 조금만 먹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아팠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컥컥"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늦은 밤 나는 죽을 듯이 울었고, 곤히 자던 엄마, 아빠는 놀라서 일어났다.
그 순간 엄마는 내 배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말했다.
"야 배가 왜 이렇노? 꼭 터질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일이고?"
엄마는 당황하며 울었고, 아빠는 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배가 터지지 않도록 나를 팔 위에 올린 채 병원으로 달렸다. 미친 듯이 달려 응급실에 도착한 아빠는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누가 우리 아 좀 살려주세요."
놀라서 뛰어나온 간호사와 의사는 내 배를 보며 경악했다.
"오늘 애가 뭘 먹었습니까?"
엄마, 아빠는 눈을 마주쳤다.
"모유 말고는 딱히 먹은 게 없는데…. 모르겠습니다. 자다 보니 아 배가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배를 이래저래 만져보던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말했다.
"내일 개복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예? 아직 돌도 안된 애를... "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빠는 그제야 제발 살려만 달라며 울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배는 더 부어올라 곧 터질듯한 풍선 같았다. 나는 밤새 죽을 듯 울었고, 엄마, 아빠는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담당 의사는 아침 일찍 수술 준비를 했다. 개복 전 배 속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작은 콧구멍으로 코줄을 넣었다. 그런데 얼마 뒤 코줄을 통해 검은 물질이 빨려 나오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계속, 줄줄줄 나왔다.
"이 새까만 게 뭐지?"
의사 선생님은 검정 물질을 계속 살펴보다 부모님을 불렀다.
"혹시 애가 어제 김 먹었습니까?"
그제야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아! 어제 김을 샀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 김이 없어졌어요."
그랬다. 난 돌도 되기 전 엄마가 산 김을 다 먹었다. 아직 돌도 되지 않은 내 배는 팽창하는 김을 감당하지 못해 터질 듯이 부어올랐다. 코줄을 통해 김이 줄줄줄 빨려 나오는 속도에 맞춰 내 배는 쑥쑥 꺼져갔다. 결국 개복하지 않고, 아무 처치도 없이 내 배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난 살면서 아빠가 나를 위해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를 아니 자식을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엄마는 아빠가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이라 그렇지, 나를 정말 사랑했다며 이 이야기를 가끔 들려주신다. 잠시 아빠가 나를 위해 울었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사랑하긴 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