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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현 May 05. 2024

보이스피싱

나의 전재산 = 할아버지 전재산

"할아버지 왜 슬퍼요?"

"할아버지가 미쳐가지고 전 재산을 잃었다."

"아.. 그럼 이거 가지세요."




사무실 점심시간, 직원들과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으려는데 시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큰 아야.. 빨리 막내한테 전화해 봐라. 어여! 알겠제? 집에 왔는지 꼭!!! 물어봐라."

숨 가쁜 아버님 목소리에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


"아버님 무슨 일 있어요?"

"막내가 잡혀있단다. 내가 풀어달라 했는데 풀려났는지 전화 함 해봐라. 알겠제?"

아차! 

"아버님! 그거 보이스피싱이에요. 돈 달라고 안 하던가요? 돈 안 줬죠?"

"야는 내가 바본지 아나. 아들 목소리도 모르게...  얼른 막내한테 전화해 봐라."

전화를 끊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아버님이 낚인 것 같았다.  급하게 막내 도련님에게 전화했다.

"도련님 집이지요?"

"네, 형수. 왜요? 아버님이 도련님 집에 있나 물어보라네요."

"직접 전화 안 하시고? 알겠습니다. 제가 전화 한번 해볼게요." 


역시 우리 시아버지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집으로 걸려 온 그놈들 전화는 아들을 잡고 있다며 아버님을 협박했다. 

"아버지 살려주세요."

귀가 어두운 아버님은 순간 모든 이성을 상실한 채 막내아들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현수가? 현수가? 현수야 괜찮나?"

"아버지 살려주세요."

아버님 귀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들 목소리만 들렸다. 

"지금 당장 3천만 원을 보내라. 안 보내면 당신 아들 현수는 죽는다. 그리고 핸드폰 번호 대라. 내가 핸드폰으로 전화할 건데 그 사이 집 전화를 끊으면 아들도 끝이다."

아버님은 순순히 자신의 폰 번호를 불러준 후, 한 손에는 집 전화,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든 채 아들을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돈 중 일부인 2천만 원을 보낸 후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아버님! 며칠 전 친정어머니한테 보이스피싱 조심하라고 그렇게 이야기하시더니..."

그랬다. 며칠 전 양가 어른들 식사 자리에서 시아버님은 평상시 순진한 우리 친정어머니가 보이스피싱 당할까 걱정이라며 각종 뉴스 사례를 들어가면서 조심하라고 당부를 했었다. 그런데 아버님이 당했다.


"그 사람들이 막내 이름도 알고 집 전화번호랑 다 알고 있던데..."

아버님은 자신이 아들 이름을 목놓아 부른 것은 잊어버린 듯했다. 


난 직원들과 시켜둔 짜장면을 입에 넣어보지도 못하고 시아버님을 모시고 경찰서로 갔다. 사이버수사대에 있는 경찰관은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버님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조사를 시작했다. 

"아버님! 요즘 이런 사기 엄청 많습니다. 조심하시지.  솔직히 돈을 찾긴 어렵지만 열심히 수사는 해보겠습니다. 일단 몇 가지 물어볼게요. 그놈들이 누구를 잡고 있다던가요?"

"네. 막내아들...."

"막내아들이 몇 살입니까?"

"................. 서른.."

"아이고... 서른 살 아들이 잡혔다는데도 의심 없이 믿었네요. 그래 아들은 뭐 합니까?"

"....................."

"아버님! 막내아들 직업이 뭡니까?"

"......................"

대답을 못하셨다. 대답을 못하실 만도 하다. 할 수 없이 내가 옆에서 조용히 말씀드렸다.

"태권도 관장입니다."

........................

순간 사이버 수사대 여기저기서 탄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야... "

"헐..."

"뭐 태권도 관장이라고?"

아버님 고개는 더 떨궈졌다. 

"아들이 30살 태권도 관장인데 잡혔다는 말을 믿었습니까?"

"분명히 아들 목소리던데... 내가 잠시 머리가 돌아가지고..."

경찰관은 안타까워하며 몇 가지 질문을 더했다.

"혼자 사십니까?"

"아니요. 큰아들 내외랑 같이 삽니다."

"그래 큰아들은 뭐 합니까? 며느님은 공무원이신 것 같은데... 큰 아드님은 뭐 하십니까?"

그러고 보니 급하게 온다고 내 목에 공무원증이 걸려있었다.

"............................"

"왜요? 큰 아들도 태권도 관장입니까?"

아버님은 또 대답을 못하셨다. 그럴 만도 하다. 또 할 수 없이 내가 대답했다.

"바다경찰입니다." 

"아이고 아버님! 경찰 아들이랑 살면서, 태권도 관장하는 아들이 잡혔다는데도 그래 속았네요."

안타까워하는 경찰관의 목소리와 점점 땅으로 꺼지는 아버님 목소리가 몇 번 더 오간 후 조사가 끝났다. 


조사를 마치고 힘이 하나도 없는 아버님을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일을 마친 후 집으로 갔다. 그런데 아버님이 눈물을 훌쩍이고 계신 게 아닌가?

"아버님 왜요? 돈 때문에요? 아깝지만 어쩌겠어요. 경찰관이 찾아줄 겁니다."

"그게 아니고... 이거..."

아버님이 손에 종이 한 장과 2만 원을 쥐고 있었다. 

"내가 오늘 누워서 계속 한숨을 쉬고 있으니 (나의) 둘째가 와서 할아버지 왜 힘이 없냐고... 그래서 내가 미쳐서 전 재산을 날렸다고 했더만 이걸 두고 갔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 전 재산을 잃어서 속상하시죠?  이건 제 전 재산인데 할아버지 드릴게요. 그러니 힘내세요!"

그랬다. 초등학교 2학년 둘째 아들이 전 재산에 대한 개념을 모른 채 할아버지 전 재산 = 자신의 전 재산이라는 단순한 계산으로 할아버지를 위로한 후 학원을 갔다. 2천만 원을 위로한 2만 원의 감동 때문인지 아버님은 일주일 만에 기력을 회복하셨다.




보이스피싱 이 나쁜 놈들은 잡히지 않았지만, 우리는 경찰이 그 잡기 어려운 보이스피싱 놈을 잡았다고 거짓말을 한 후 형제들끼리 돈을 모아 아버님을 드린 건 안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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