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아현 May 19. 2024

남 좋은 일하는 팔자!

타고난 것이었다.

"내 소원은 니가 한 번만에 학교 가는 거다!"

"아! 지갑." "아빠! 내 삐삐 좀!"

학교 갈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들락거리는 내게 아버지는 늘 이야기했다.        

  



대학교 때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 빠져있었다. 클래식 기타의 선율이 좋았고, 그런 선율을 내는 선배들의 손놀림이 멋있었다. 동아리 방에서 듣는 선배들의 연주에 늘 심장이 뛰었고, 이유 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나의 감정은 이성을 자주 마비시켰다. 정신 줄을 놓은 사람처럼 중요한 일을 깜박깜박하며, 온몸으로 허당미를 발산했다.


나는 하나에 빠지면 다른 걸 잘 생각하지 못하는 단순한 뇌를 가졌다. 지금은 이런 나를 집중력 강한 사람이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난 단순하다에 가깝다.   

  

그런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동아리 총무를 맡았다. 각종 행사 때마다 돈주머니를 챙겨야 하는데, 내 성격을 알기에 늘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자주 현실로 나타났다.      


하루는 동아리 정기 연주회 후원을 받기 위해 학교 앞 자주 가는 밥집, 술집, 카페를 돌아다녔다. 매년 하는 연주회지만, 자주 매상을 올려주는 우리 동아리를 위해 가게마다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왔습니다. 올해도 도와 주실거지요?”

“아! 자주 오는 학생이네. 그럼 도와줘야지.”

가게 사장님들은 적게는 3만 원, 많게는 10만 원까지 건네며 연주회를 도왔다.


하루 40만 원의 거금을 모은 날, 큰 일을 한 내가 대견해 운동장을 가로질러 동아리 방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현아! 뭐가 그래 신나?”

길에서 동아리 선배를 만났다. 너무 신난 마음에 호주머니에 있는 돈 봉투를 꺼내 자랑하려고 하는데...

돈봉투가 없다. 호주머니를 뒤집어 보고, 옷 구석구석을 찾아봤지만 40만 원이 들어 있는 돈봉투가 없었다.

“왜? 뭐 없나?”

“아니요. 아니... 40만 원이 있었는데...”

“뭐? 40만 원?”

90년대 40만 원은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선배는 놀라 내가 걸어온 길을 함께 걸으며 찾았지만, 그 사이 돈봉투는 사라지고 없었다. 온몸에 땀이 나고, 가슴은 쓰리고 아팠다. 내가 너무 밉고 한심했다.

“할 수 없다. 다른 곳에서 더 받자. 실망하지 말고...”

선배는 나를 위로했지만, 난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내가 싫었다. 동아리 방으로 향하던 나는 발걸음을 돌려 대운동장 스탠드 구석에 앉아 울었다.

‘난 왜 이럴까? 뭐가 문제지? 정말 바보 아닌가?’

스스로 자책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눈을 뜨니 밤 10시! 4시간이 지났다.

세상에 이 와중에 잠이 들다니...

난 너무 놀라 동아리 방에 둔 가방을 챙기러 갔다. 그런데 선배들 서너 명이 아주 심각하게 앉아있는 게 아닌가!

“야! 아현아. 너 뭐고? 어디 있다 온 거야?”

그랬다. 큰돈 잃어버린 걸 안 선배가 가방만 두고 사라진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4시간이 지나서야 입 주변에 침을 묻히고, 헝클어진 머리로 들어오는 꼴을 보면서 기가 찬 듯 말했다.

“대단하다. 아현이!”

그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었고, 난 정신은 없어도 마음은 편한 아이로 각인되었다.

사실 난 너무 슬프거나 화가 나면 모든 것을 잊고 싶은 듯, 잠을 자는 버릇이 있었다.                


한 번은 동아리 엠티를 갔다. 기차를 타고 내려 버스로 갈아타기 전, 마을 어귀에 있는 마트에서 두 손 가득 장을 봤다. 빠진 것 없이 잘 챙긴 뿌듯함으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선배가 물었다.

"아현아! 버스표 니가 들고 있지 말고, 다 나눠줘라. 잊어버릴라!"

"네."

버스표를 꺼내기 위해 호주머니를 뒤지는데 또 버스표가 없다. 20명이나 되는 단체 버스표였다. 선배들은 마지막에 버스표를 봤던 나의 기억과 내 이동 동선을 캐묻기 시작했다. 결국 동아리 사람들 모두가 희미한 나의 기억을 따라 흩어져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히 버스가 오기 직전, 선배 한 명이 버스표를 찾았다.

"야! 너 냉동만두 샀나?"

"아.. 살까 하다 안 샀는데... 왜요?"

"냉동만두 든 냉동고 안에 있더라!"

냉동고에 왜 버스표가... 다행히 표는 찾았지만, 그 뒤 모든 사람들은 수시로 나를 의심했다.

"표는? 돈은? 가방은?"




학교를 마치면 학교 앞에서 역까지 같은 버스를 타는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버스에서 내린 친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 버스에 지갑 두고 내렸다.”

손에 들고 있던 지갑을 수다 떤다고 잠시 놓았는데 그걸 두고 내린 듯했다.

“아이고. 정신 차리지. 일단 다음 버스비 내가 줄게.”

돈보다 지갑이 아깝다는 친구를 위로하며, 버스 한 번을 더 타야 하는 친구의 버스비를 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 엄마에게 친구의 정신없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 니는 지갑 잘 챙겼제?”

“그럼. 내 지갑에서 친구한테 버스비까지 꺼내 줬는데...”

그런데 지갑이 없다. 분명 마지막 버스 타기 전 친구에게 버스비를 주고, 내 버스비를 냈는데 지갑이 없다. 가방을 뒤져보고 외투를 다 뒤져도 없다.

나는 친구와 똑같이 손에 들고 있던 지갑을 아무 생각 없이 무릎 위에 살포시 올리고 있다 편안하게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다음 날 친구는 자신보다 더 한 나를 보며 깔깔 웃었다. 그리고 선배들이 말했다.

“야! 우리 앞으로 아현이만 따라다니자. 며칠만 따라다니면 부자 되겠는데!”


나는 이렇게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을 도왔다. 어쩌면 그 팔자 때문에 지금도 난 나, 나의 가족은 제대로 못 챙기면서,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이전 06화 제사! 그리고 또 제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