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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현 May 12. 2024

제사! 그리고 또 제사

결혼은 미친 짓이야.

시어머니 제삿날이었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들어오는데 시아버지가 물었다.

"장 빠진 거 없이 다 봤나?"

그냥 물어보실 뿐인데 괜히 밉다.   




나는 5대 장손 며느리이다. 다행히 종손 며느리는 아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시집와서 23년째 제사와 명절을 지내고 있는데도 익숙하지 않고, 계속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주변에 점점 편한 명절을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아닐까 싶다.  


나도 긴 연휴에 여행 가고 싶고, 나도 제사 음식 걱정 없이 그냥 주문해서 대충 지내고 싶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시아버님이 떡하니 계신다.(난 23년째 시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늘 음식을 조금만 해라 하고, 간단하게 해라고 말씀하시는 참 좋은 시아버님이다.  

그러나 늘 뒤끝이 개운치 않다.

"그래도 전은 해야지, "

"조기 한 마리는 구워야지."

"손님들 오면 먹을 건 있어야지."

또 요즘 명절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고 여행 가는 사람이 많다는 뉴스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저런 나쁜 놈들..."


결국 난 음식 하나를 줄이지도, 편하게 하지도 못한 채 23년째 제사와 명절에 많은 음식을 하고 많은 손님을 맞으며 지내고 있다. 그나마 코로나 이후로 많이 줄었지만...  


이렇게 불평을 하지만, 시아버지가 있는 한 아니 사실은 책임감 강한 내 성격상 무슨 일이든 그냥 대충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이 50이 되면서 제사와 명절을 맞이하는 나의 각오로 절대 불평불만을 하지 말자!로 정했다.

 

그런데 혼자 장을 보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오는데 시아버님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 다 봤나? 뭐 빠진 건 없고?"

그냥  "네"라고 대답하면 될 것을 나는 또 불평을 해버렸다.

"너무 무거워 죽겠어요.  아버님 난 다시는 장남하고 결혼 안 할랍니다."

어이없는 불평으로 소심하게 짜증을 표했다.


시아버지 칠순 잔치에서 시댁 어르신들 앞에 두고 양혜승의 화려한 싱글을 부르며 '결혼은 미친 짓이야'를 외친 어이없는 행동에 이은 두 번째 나의 불평불만의 표현이었다.


시아버님은 내가 시시 껄껄한 농담 하나 던진 것처럼 생각하고, 웃으며  "그래라."하고 방으로 들어가신다.


아! 나는 정말 다시는 장남하고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작년 시어머니 제사 전날 장을 보면서 생긴 불평을 간단하게 적어둔 글이었다. 지금도 이 생각이 변함없을까? 23년간 한 불평이 1년 만에 바뀌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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