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뼛쭈뼛, 두리번두리번 거리고있을 때 앞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예쁜 여자 선생님과 뚱뚱한 교감 선생님이 함께 교실로 들어왔다.
"자! 자! 주목. 이번에 5학년 8반을 맡게 된 선생님은 올해 교육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최고의 선생님이다. 그러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4학년 때까지 담임을 교감 선생님이 직접 소개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교감 선생님이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어깨를 한껏 올린 채 담임을 소개하는 걸 보면 우리 선생님은 뭔가 특별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특별한 나의 선생님은 12살의 나, 아니 지금의 내가 나로 살 수 있도록 해준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의 첫 제자이자 친구가 되었다.
첫날 첫 수업, 선생님은 칠판에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수업 제목을 적었다. 그런데 판서가 조금씩 위로 올라가더니 삐뚤빼뚤해졌다.
'선생님도 선생님이 처음이라 긴장되시는구나. '
선생님은 처음이라 긴장하던 그 순수함과 열정을 간직한 채 1년 동안 우리에게 깊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었다.
혈우병을 앓는 아이가 창문을 닦다 떨어져 코피를 흘리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뛰던 선생님.
내 짝지가 말없이 학교에 오지 않자 집까지 찾아가 아이를 확인하고, 짝지의아버지가돌아가셨다면서눈물을 흘리던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 특별했다.
하루는 수업 시간 중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아이들이 쉬는 시간인 양큰소리로 떠들며 뛰어다니다교감 선생님께 딱 걸렸다.
"담임 선생님 어디 가셨어? 선생님 없다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큰 덩치에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교감 선생님 뒤로 놀라서 뛰어 온 선생님이 보였다.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께 고개 숙여 사과한 후 조용히 교실로 들어왔다.
"전부 눈 감고 고개 숙여. 그리고 너희들이 지금 한 행동이 뭐가 문젠지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거야. 알겠지?"
교실은 조금 전과 달리 숨 쉬는 소리마저 미안할 만큼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모두 눈을감고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응시했다.
그때정적을 깨는 선생님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아, 혼나나? 손바닥 맞을까? 근데 왜 조용하지?'
걱정과 궁금함에 눈을 살짝 떴더니 선생님이 앞에 있는 아이의 귀에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침을 꼴깍 삼키며내 차례가 되길기다렸다.
드디어 선생님이 왔다. 선생님은 가까이 다가와 내 귀에 부드러운 입을 갖다 대었다.
"아현아! 내 눈에는 니가 제일 이쁘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니가 참 좋아. 사랑한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이쁘다... 사랑한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났다. 살짝 눈을 뜨고 선생님을 쳐다보니,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찡긋하더니 다시 뒷자리 친구에게 걸어갔다.
나는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였다. 선생님 말도 잘 듣는 아이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선생님에게 사랑 아니 관심조차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건 엄마가 학교에 한 번도 오지 않는, 평범한 내겐 없는 건지 알았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선생님이 이쁘다고, 사랑한다고 했다.
어쩌면 선생님은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부터알게되었다. 나는 이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였다,
올해도 스승의 날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스승의 날이라 생각나서 연락드려요."
"야는 내가 무슨 니 스승이고? 같이 나이 들어가는 친구지."
3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해온 나의 선생님은 지금은 나의 어머니, 나의 친구이다.
세상 경쟁에 뒤처진 듯 우울할 때, 삶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맬 때 늘그부드러웠던 귓속말이 떠오른다.
"내 눈에는 니가 제일 이쁘다. 사랑한다."
선생님은 몇 해 전 명예퇴직을 하셨다. 일이 힘들고 싫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담임이 되면 엄마들이 싫어하는 게 보여서 이젠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아."
나이 든 담임을 좋아하지 않는 젊은 엄마들의 눈빛에 선생님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던 일을 그만두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