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아현 Apr 14. 2024

이마에 난 구멍

6살 때 우당탕탕 이야기


지금은 많이 옅어져 표가 나지 않지만 아주 오랫동안 이마 정중앙에 작은 구멍, 어릴 때 표현으로는 빵꾸가 있었다. 어릴 때는 거울을 볼 때마다 구멍이 보였고, 구멍을 만질 때마다 아팠다. 



6살 어느 가을의 이야기다.

우리 동네에는 놀이터가 딱 하나 있었다. 그네 두 개, 미끄럼틀 하나, 정글짐과 시소,  그리고 모래놀이터.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좋은 놀이터였다. 당시는 동네에서 좀 사는 애들 빼고는 유치원 가는 애들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침밥만 먹으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놀이터에 모였다.  


놀이터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그네를 타고, 다음은 미끄럼틀, 시간이 지나 친구들이 많이 모이면 정글짐에서 잡기놀이, 모래놀이를 하며 놀았다. 하루종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종일 있어도 지겹지 않은 곳!

놀이터는 내게 천국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놀이터 주변은 철조망으로 뺑 둘러쳐져 있었다. 놀이터 끝이 낭떠러지라 아이들에게 끝으로 오지 말라는 주의 차원이었겠지만, 나의 천국에 철조망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사건은 그네에서 멀리뛰기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놀이터에 가장 인기 있는 놀이 기구는 그네였다. 놀이터에 도착하면 모두 그네를 향해 뛰었고, 먼저 온 친구가 그네를 타고 있으면 한없이 쳐다보며 양보하길 압박했다. 

"야! 10번 센다. 10번만 타라"

"나 이제 탔거든. 30번 하자."

"알았다. 지금부터 센다. 하나. 둘. 셋."

그렇게 탄 그네는 내게 하늘과 세상을 선물했다. 가속도가 어느 정도 붙으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두 다리를 휘감았다. 조금씩 높이 올라가면 집 지붕이 보이고, 다음은 대문이, 더 올라가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보였다. 갔다 왔다 할 때마다 조금씩 더 보이는 세상은 신비로운 마법 같았다. 높이 올라갈수록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바람결에 긴 머리카락까지 휘날리면 내가 동화나 만화 속 주인공이 된 듯 착각했다.  


그러다 문득, 나도 모르게!  왜 그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날아보고 싶었다.


순간 나는 그네 줄에서 손을 놓고 날듯이 팔을 벌렸다. 새처럼 날아서 철조망을 넘고 낭떠러지를 지나 땅에 사뿐히 착지할 거라 믿었다. 만화 속 주인공처럼. 


그러나 현실 속에 나는 너무 무거웠다. 


날아오르는 그네에서 팔을 벌리자마자 그대로 앞으로 처박혔고, 내 이마는 정확하게 철조망에 꽂혔다.

나는 놀라고 아파서 미친 듯이 울었고, 당황한 친구들은 우리 집으로 뛰어가 엄마를 데리고 왔다. 

"아주머니, 아현이 머리가 철조망에 꽂혔어요."

놀란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런데 멀리서 울고 있는 나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머리 빼라."

"어?"

"여태 머리를 철조망에 왜 꽂고 있노?"

난 아프고 놀라서 철조망에 이마를 꽂은 채 한참을 울었고, 엄마는 그런 내가 웃기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 엄마 말을 듣고 머리를 빼니,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 입안까지 들어왔다.

"아이고! 머리를 박았음 빼면 되지, 여태 거기다 머리 박고 뭐 하는 거고? 가시나 별나기는. 빨리 집에 가자."


난 진짜 아픈데,  엄마는 별 일 아닌 듯 내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 물론 나도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엄마가 더 이해되지 않았다. 난 진짜 아픈데...


엄마는 집에 와서 아무 말 없이 소독을 하고, 빨간약을 바른 후 반창고 하나 붙여주었다. 


세월이 지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철조망에 머리 꽂혔을 때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 있어? 괜찮냐고 먼저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놀라면 니가 더 놀랄까 봐. 애들이 니 머리 철조망에 꽂혔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놀라서 달려갔는데... 근데 갔더니 빼면 될 머리를 계속 철조망에 박고 있으니 기가 차고, 웃기기도 했다." 

그랬구나. 엄마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구나. 

"요즘 같으면 응급실 가고 난리였을 건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우리는 참 무식하고 용감했다."

그런 무심함과 용감함이 오히려 우리를 단단하게 키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이젠 이마의 구멍이 세월의 주름 속에 묻혀버렸다. 


이전 01화 식탐의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