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이었다. 어머님께서 허리를 자유롭게 가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 채로 굳어버려 한걸음조차 제대로 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갑자기 닥친 비상사태에 우리는 모두 어쩔 줄을 몰랐다. 지방에서부터인천공항으로, 탑승이지연되는 동안 공항에서 대기하고,비행기를 타고, 며칠 동안 관광지를 다닌 후 지지력이 낮은 침대와 소파에서 부대낀 탓이었다.
방이 네 개였던 숙소. 제일 끝에 위치했던 우리의 방
나니의 부축으로 어머님은 겨우 침대에 몸을 눕혔다. 온찜질을 위해 뜨거운 물에 수건을 교차로 삶아내는 동안, 네 명의 손주들이 달라붙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머니를 주물러댔다. 아픈 건 허리인데 손과 발을 주물러대니 성가실 만도 했건만 할머니는 아이들을 그대로 두었다.
괌 힐튼호텔 워터파크 슬라이드
그날은 주일이었다. 낯선 영어캠프에 매일 출석하느라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을 아이들과 워터파크를 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아이들은 수영복으로 이미 환복을 마쳤고, 어른들은 필요한 짐을 싸던 중이었다. 그러나 몸이 부자유한 어머님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계획 수정이 필요했다.
발까지 선크림을 바를 생각은 미처 못했다. 괌의 흔적이려니.
앞서 우리는 현지에서 방문할 교회가 여의치 않아 가정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어머님은 한 때 목사 안수를 받고 사역을 열심히 했지만 체력적인 문제로 쉬고 계신 상황이었다. 그래도 가끔 가정예배 때마다 전해주시는 말씀에는 여전히 생명력이 있었다. 괌에서도 막대기와 지팡이로 예배를 인도해야 할 우리의 목자가 그만 지팡이가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숙소 룸 안에 있던 욕조의 바깥 풍경. 그립다.
나니는 어머니의 반신욕을 위한 온수를 받아놓고, 남편의 지휘 아래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다. 손주들의 기도에 힘입어 어머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에 기대 서서 말씀을 전하셨다.손주들은 위기상황을 직감했는지 그 어느 때보다 할머니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 평소 밥 먹으란 소리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놀기만 하던 손주들은 할머니가 전해주는 말씀의 양식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짧은 말씀을 마치고 난 어머님은 허리가 많이 괜찮아졌다며 반색을 하셨다. 우리는 모두 기뻐했다. 기적이라며 당장이라도 홍해를 가르고 뛰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워터파크의 물살을 가를 태세였지만,어머님과 함께 나니는 숙소에 남기로 했다. 그간 무리했던 게 하나의 신호로 온 것이니 어머님껜 휴식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챙겨 온 소염제를 복용한 뒤 어머님은 깊은 잠을 청했다.
오후에 어머님은나니와 함께 호텔로 오셨다. 호텔과 연결된 해변을 거닐며 이번 여행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으셨다. 대부분 딸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그리고 지나간 세월에 대한 서러움이었다. 어머님은 나니와 나니의 딸을 보며 본인과 나니의 젊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엄마가 아직 세상의 전부였던 그 시절의 나니는, 이제 엄마를 모시고 해외여행을 올 수 있을 만큼 커버렸다. 그러나 엄마는 이제 사진을 찍어도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보이는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과,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체력적 한계에 속상하기만 하다.
엄마는 열심히 동행하고 있지만 딸의 성에 차지 않는다. 어젯밤 해변가에서 놀던 아이들을 엄마와 먼저 들여보냈는데, 밥이 먼저라고 생각한 엄마는 아이들을 샤워실로 들여보내는 대신 밥을 지었다.천방지축 아이들은 그 사이 여기저기 모래를 흘렸다. 나중에 물티슈로 그것을 훔치며 나니는 엄마에게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 먹일 밥이 아니라 아들(나의 남편) 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그랬으니까.
숙소의 넓은 거실. 청소기나 빗자루가 따로 없어서 물티슈로 바닥을 닦아야 했다.
"나는 애들 엄마가 아니라서 그런 것까지는 몰라."
엄마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딸에게 항변했다. 사실 나니는 엄마에게만 화가 났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마음대로 혼낼 수 없는 조카들에게도, 눈치 없는 오빠에게도, 소극적인 올케에게도 쌓였던 마음을 엄마에게 한꺼번에 터뜨렸을 것이다.누구보다도 자기 마음을 알아주면 했을, 알아줄 수 있었을 엄마에게. 이번 여행에서 나니는 인솔자의 역할을 자처했지만 모든 결정의순간마다 외로웠을 것이다.어쩌면 그것을 받아주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 엄마의 몫일 거라고, 조금은 미안하지만 아직은 젊은 딸과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딸과 엄마
여행은 삶의 연장선이다. 어머님과 나니는 나니의 결혼 때부터 같은 지역에, 지금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간 엄마와 딸 사이에서 있을 법한 크고 작은 서운함이 괌의 맑은 바닷물 사이로 새어 나왔다. 마음속 구정물은 맑은 바닷물을 흐릴 정도는 아니었다. 너른 바다는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바다는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염도보다 진한 소금기를 머금은 채 그저 넘실, 넘실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