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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Aug 04. 2024

해석할 필요 없이 알아챌 수 있는 것

내 아이디로는 만화책만 빌릴 거라고


아이와 매일 도서관에 가고 있다. 휴가 다녀온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출석도장을 찍어서 날짜별 기록 일지는 벌써 한 면을 다 채웠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만화책 위주로 탐독하는데 엄마 욕심으로 줄글책을 한 번씩 슬쩍 권하고 있다. 집에서도 만화책을 제일 먼저 집어 들긴 하지만, 빌린 책을 얼른 반납해야 한다는 마음에 대출한 줄글책도 꼬박꼬박 읽다. 엄마의 의도가 통한 셈이다.


주말이라서 작은 도서관에는 평소보다 어린이들이 많이 모였다. 그중 앞쪽에 앉은 아이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전달되었다.


"엄마 아이디빌리란 말이야. 내 아이디로는 만화책만 빌릴 거니까."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사업은 도서관 방문 횟수와 도서 대출권수, 독서 기록 공유 횟수에 따라 장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애초에 자치구 소속의 초등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에 비해 선발 장학생 수가 터무니없이 적기도 하고, 솔깃할 정도의 큰 금액은 아니라서 독서 습관을 형성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중이었다. 아이도 출석도장 찍는 것을 스티커 모으기 식으로 생각하는 모양인지 도서관 방문에는 어려움이 없다. 그래도 이왕이면 일정 도서 대출권수를 채우고 싶고, 그 목록을 만화책으로만 이루고 싶진 않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우리 아이가 종류별로 다양한 독서를 했다는 식의 증빙을 은근히 남기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그 아이의 엄마 또한 나와 동일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아이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중이었다. 아이가 여러 번 말하는 것을 보니 엄마도 한 번에 물러난 건 아닌 모양이다. 사실 책을 권할 목적이라면 누구 아이디로 빌리든 상관은 없지만, 사업에 참여하는 대상은 엄마가 아니므로 대출기록을 위해서는 아이의 것으로 하는 게 장학생 선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거세진 항변에 결국 알았다고 수긍하는 듯했으나 이번엔 다른 식의 요구를 했다. 영어책 원서를 읽어보라고 한 것이다. 아이가 영어로 읽고 엄마는 아이가 문장의 뜻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내용을 되물었다. 아이의 영어 읽기 실력과 발음이 어찌나 유창하고 좋은지,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의 영어책 읽는 소리에 집중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저 정도의 영어실력을 키우기까지 엄마와 아이 모두 많이 노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는 엄마의 노력이 있었을 테고 아이가 잘 따라가 준 덕분일 것이다. 지금도 영어책을 읽어보라는 엄마의 요구를 그대로 들으면서도, 엄마가 권하는 책을 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왜 유난하게 반응할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영어로 책을 읽어보라는 것보다 대여만 해가는 것이 더 쉬울 텐데 말이다.


지금은 엄마 의견을 수용해 주는 내 아이도 언젠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그 아이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짐작해본 마음이 떠올랐다.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만 채우고 싶다.



좋아하는 음악들로만 플레이리스트를 채우듯, 그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으로만 대출목록을 채우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좋아한다는 거창한 마음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온전히 내가 선택한 것으로만 무언가를 채우고 싶은 마음. 아이는 그것을 주장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아마도 독서 장학생 선발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회적 기준은 지금이나 앞으로도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경험을 요구할 것이고, 어른들은 그 기준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이 사회의 경쟁에서 아이들이 살아남고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단, 모두가 그 기준에 통과할 수 없을 뿐.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은 많이 성장했다는 증거다. 자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대로 부모의 의지대로 아이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가 당장 좋은 선택만 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부모로서는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아이가 자라 갈수록 앞으로 계속될 긴장감 속에서 조금 더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국은 아이를 좀 더 인정하고, 믿어주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너를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너에게 좋다'는 깊은 뜻을 품고 하는 어떤 말과 행동은 시간이 지나서 돌고 돌아 전달될 수도 있겠다. 세월만큼 쌓여야만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는 나이테 같은 사랑도 있으니까.


그러나 모든 길을 돌아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사랑을 읽기도 전에 지치고 만다. 해석할 필요 없이 알아챌 수 있는 사랑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부모의 깊은 뜻을 파악하기 위해 더듬거리며 그 사랑을 읽어나갈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 사랑에는 시기와 대상에 따라서 줘야 하는 사랑도 있을 것이고, 그저 받아줘야 하는 사랑도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의 것을 인정하고 받아달라고 한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때는 받아줘야 하지 않을까. 미리 체념하듯 다짐해 본다. 적어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그에게 주는 사랑이 전달되기까지의 시간보다 더 단축될 것만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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