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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루 Jun 09. 2024

감각과 감정의 상관관계

감각을 느껴야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감각을 느껴야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수환씨는 첫눈에도 컴퓨터 앞에서 코딩을 하는 직업을 가졌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노트북이 들어가 있을 법한 커다란 백팩을 메고 까만색 뿔테 안경에 평범한 케쥬얼 복장을 입고 상담실을 찾아온 수환씨는 몇 년 전, 대학병원에서 범불안 장애로 진단을 받았고 폐쇄 병동에서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알게 된 것은 그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프로그래머를 꿈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프로그래머가 되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난 몇 년간 앓고 있는 불안장애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일을 하고 싶어요.” 수환씨가 저를 찾아온 이유는 취직을 하고 싶어서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프로그래머는 하고 싶지 않지만, 번듯하게 성공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2024년보다는 1994년의 청년다운 포부의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요즘 청년이라면 ‘번듯하게 성공’과 ‘효도’라는 말 대신에 ‘독립해서’와 ‘걱정 끼치지 않고’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상담 신청서의 나이를 한 번 쓰윽 보았습니다. 스물여덟, 당사자들은 이미 너무 많은 나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무엇이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 수환씨가 할 수 있는 일을 꼭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무 스트레스로 일을 그만두었다는 수환씨의 퇴사 스토리는 입사 후 버틸 만큼 버티다 번아웃을 경험하고 회사를 정리하는 또래 직장인의 스토리와는 달랐습니다. 두 곳의 회사에서 근무를 한 전체 기간이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중 하나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으로 최근 그만둔 회사와 이전 회사 사이에 3년 이상의 근무 공백이 있었습니다. 폐쇄 병동에 왜 입원했는지, 불안장애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기 전에 저는 수환씨 신경계 패턴과 감각지각 능력을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몸에서 어떤 것들이 느껴지나요?” 수환씨의 신경계 패턴과 감각지각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위해 바디풀니스 탐색 질문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기분은 어떤가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앞으로 상담에서는 감각지각 능력을 촉진하는 작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몸은 잔뜩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굳은 표정, 긴장한 팔다리, 움직임이 거의 없는 몸. ‘나는 지금 너무 불안해요.’라고 온몸이 외치고 있었지만 수환씨는 불안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불안한 감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몸 안쪽의 감각을 잘 느낄 때,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각지각 능력은 자신의 몸 안쪽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느끼는 능력으로 통증 외에 몸 안의 긴장과 이완, 호흡, 에너지의 흐름, 떨림 등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떨어지면 감정을 알아차리기도 어려워집니다. 감정은 몸의 감각을 기반으로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수환씨 역시 자기감정을 말하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상담 초반 몇 회기는 호흡과 움직임을 통해서 자기 몸의 감각과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던 수환씨가 어느 날 상담실에 들어와 앉더니 ‘이질적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상담실 안에는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저도 수환씨도 무엇을 이질적으로 느끼는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그 궁금함에 머물러 보기로 했습니다.      


“공기요. 공기가 이질적이에요.”

그 말을 듣고 나서 냉방기를 틀었다는 것이 생각나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상담실 방 안에 차가워진 공기를 피부로 느끼고 난 후부터였습니다. 수환씨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하나씩 찾기 시작했습니다.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되자 자연스럽게 감정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수환씨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속)    

 

※마음을 고치는 이야기의 사례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하지만 내담자 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 각색·가공되었습니다. 


관련기사: 안유선의 소매틱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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