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이런, 사랑에 빠진 내향형 남자라니. 은섭은 북현리같은 남자다. 겨울이 되면 논두렁에 스케이트장이 생기고, 들판에 지푸라기를 발효시키는 통들이 널려있는 작은 마을, 북현리. 조용하지만 나름의 즐거움이 있고 제 몫을 묵묵히 해내는 곳, 북현리같은 남자라면 도시에서 상처 받은 해원에게 위로가 되겠지.
"들판에 저 마시멜로들 말야, 짚 발표시키는 통, 그거 진짜 이름 알아."
해원은 은섭에게 삼 년 전 했던 질문을 다시 한번 묻는다. '곤포, 사일리지'라는 대답을 들어놓고도, 은섭에게 되묻는 해원. 해원은 물었던 기억조차 없다, 그 무심함에 은섭은똑같이 '곤포, 사일리지'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하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린다.
"그게 안 외워졌구나. 내년 겨울에 또 물어봐. 다시 말해줄게. 잘 자라.."
자기가 얼마나 잘난지 뽐내는 도시형 남자들, 멋지지만 지친다. 도시형 남자에 지친 여자들에게 은섭은 힐링이다. 해원의 뒤통수만 봐도 넋이 나가고 좋다는 말도 못 해 비공개 블로그에만 마음을 고백하는, 천연기념물 같은 은섭.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적 힐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