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 그 특별함에 대하여

by 안유선

마지막 싸움을 싸우는 법을 배우다


사진 : Paul Kee Jean

스파링 하는 것에 재미가 붙기 시작하던 무렵, 많이 부딪히고 넘어지니 온몸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서서 싸우다 넘어지면, 넘어진 상태로 계속 싸워야 하는데 잘 넘어지는 요령도 모르고 적당히 할 줄도 몰랐다. 빨갛고 파랗게 멍이 드는데 누가 볼까 무서울 정도였다. 아프기도 하고 남들은 요령껏 잘하는 것 같은데 나하고는 안 맞나 싶어 체육관을 잠시 쉬었다.

"주짓수, 나하고는 안 맞나 보다"


운동을 안 할 수는 없어서 격투기만큼 힘들다는 발레 학원에 등록했다. 발레는 소문대로 고강도 운동이었다. 팔다리 근육을 가늘고 길게 뻗어내는 알롱제, 한쪽 다리를 세우고 반대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리는 아라베스크, 코어에 단단히 힘을 주고 발바닥을 바닥에 스치듯 밀어내며 다리를 크게 들어 올리는 그랑 바뜨망 같은 연속 동작을 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에너지 소모가 컸다.


발레는 격투기 수련 수업에 맞먹는 운동 효과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멍들 염려도 없었다. 그런데 운동을 끝내고 오는 길에 자꾸 체육관 생각이 났다. 운동은 충분히 한 게 맞는데 뭔가 시원하지 않았다. 상담실에 가서 말은 잔뜩 하고 왔는데 진짜 마음을 숨긴 채, 하고 싶은 말은 못 하고 온 것 같다고 할까? 마음이 문제였다.

이삼십 대 여성이 대부분인 발레 레슨 수업을 마치고. 발레복과 슈즈가 들어 있는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 마음은 무슨 말을 하지 못해서, 무엇을 표현하지 못해서 이렇게 답답해하는 것일까?


마음속에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가면서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챙길 것은 늘어갔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키우는 것은 지옥 형벌을 받는 것처럼 고되고,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는 것도 그달 그달 빠듯했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삶의 무게로 마음속은 마지막 전투가 한창인데 아름다운 백조처럼 우아하게 춤을 추려고 하니 어색하고 답답할 수밖에.


삶의 무게가 무거워서 주저앉았다고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마지막 싸움을 싸우듯 버텨야 하는데!

"이거 가드잖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서 싸우다 안되면 넘어져서, 넘어져서 싸우다 안되면 등을 대고라도 싸우는 싸움, 가드는 주짓수의 시그니처 동작이다.


서서 싸우다 안되면 넘어져서, 넘어져서 싸우다 안되면 등을 대고라도


들짐승들이 천적과 싸우다 막판에 몰리면 등을 땅에 대고 발로 상대를 차내며 싸운다. 더 이상 밀려나면 안 된다는 치열함으로 어금니를 깨물고 싸우는 움직임, 나에게는 그런 움직임이 필요했다. 팔다리에 드는 멍은 마지막 싸움을 연습하면 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체육관으로 돌아갔다.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매트 위에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또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가드 연습을 하는 수련생들이 보였다. 마지막 싸움을 싸우면서도 얼굴에는 평온함과 유쾌함까지 번져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체육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다시 마지막 싸우는 싸움을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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